중국
분류

밀산 항일 유격대

한자 密山 抗日 遊擊隊
중문 密山抗日游击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계서시 밀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중국 공산당 산하 항일유격대
설립자 중국 공산당 밀산현위원회
설립 시기/일시 1932년 3월 20일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4년 10월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밀산현
정의

1930년대에 흑룡강성 밀산현(密山縣)에서 중국 공산당 밀산현 위원회의 주도로 창건되어 활동한 항일 유격대.

개설

1931년 9월 일본의 만주(중국동북지방) 침략이후 구 동북군벌계통의 중국 의용군이 각지에서 봉기하고, 많은 중국인 대중도 봉기하였다. 그러나 1932년 3월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성립하고, 일제의 항일세력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면서 이들은 차츰 쇠퇴하였다. 대신 중국 공산당 만주지부조직이 주도하는 항일운동이 점차 고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얼빈 일대의 북만주 지방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마점산 등 중국 의용군은 일본군의 공세에 밀려 쇠퇴하고 말았다. 이 와중에 밀산 등지에서 활동하다 흩어진 김백만(金百萬, 한인) 등 4인의 중국 자위군(自衛軍)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항일대오 ‘돌격대’를 조직하였으나, 지도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자위군 26려(旅)의 사병인 장보산(張寶山)을 중심으로 유격대를 결성하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였다. 이들은 1934년 2월 중국인 지주의 무장대를 기습하여 소총 10여 자루를 노획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중국 공산당 밀산현위원회는 이들과 접촉하여 장보산(張寶山, 漢族)을 대장, 김백만(金百萬)을 부대장겸 중국 공산당 지부 서기로, 김근(일명 김현)을 참모겸 지도원, 김창덕(일명 이덕산)을 분대장에 임명하였다. 설립 초기에 한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창건 당시 34명의 대원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총으로 무장하였다. 이후 이들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나중에 주수일(朱守一, 한인)이 대장을 맡았다. 일명 밀산 홍색 유격대(密山紅色遊擊隊), 민중 항일군(民衆抗日軍) 등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설립 목적

구 동북군벌계의 의용군인 자위군 일부 장병들과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산하의 항일 유격대를 통합하여 단일조직을 결성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세워졌다. 또한 항일 유격 근거지를 건설하며 이곳을 토대로 동만주 지역의 중국인, 한인 대중을 포섭하여 공산주의 운동도 전개하려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30년대 중반 북만주 밀산(密山) 일대에서 전개된 항일 무장 투쟁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밀한 일대의 각종 항일세력을 규합하고, 유격 근거지를 건설·보위하며 중국인과 한인 대중을 기반으로 하여 반제·반봉건·계급투쟁을 전개하는 데 있었다. 예를 들면 1933년 여름부터 1934년 봄 사이에 밀산현의 합달하(哈達河)에 유격 근거지를 세우고, 이곳을 근거지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의의와 평가

김백만(金百萬, 한인) 등 4인의 자위군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항일대오를 규합하고 스스로 항일 유격대를 결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며, 북만주와 동만주 일대의 항일 무장 투쟁과 대중운동을 고양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후일 북만주지역 동북 항일 연군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변천

1934년 10월 중국 공산당 길동국(吉東局) 순시원 양송(楊松)의 지도로 동북항일동맹군 제4군이 결성되자 제2군에 편입되었다.

참고문헌
  • 장세윤,『허형식 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제7집 (독립기념관, 1993)
  • 신주백,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1920~45)』(아세아문화사, 1999)
  • 양소전 외, 『중국조선족 혁명투쟁사』(연변인민출판사, 2009)
  • 류혁, 「밀산의 항일풍운록」(『봉화(중국조선민족 발자취총서 3)』, 북경 ,민족출판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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