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7인 단지 동맹

한자 7人 斷指 同盟
중문 7人断指同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흑룡강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항일 민족 운동 단체
설립자 안중근 등
설립 시기/일시 1909년 3월
최초 설립지 러시아연해주 연추 (IaN'chikhe, 煙秋·延秋)
정의

1909년 3월 초 안중근 등 항일 투사 등 7명이 러시아연해주의 연추(Ian'chikhe, 煙秋·延秋)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결의한 동맹.

개설

1909년 3월 러시아연해주의 연추에서 안중근을 비롯한 항일투사 7명이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와 매국노 이완용에 대한 암살계획을 세우고, 3년 이내에 이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자살로써 국민에게 속죄하겠다며 왼손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 피로써 항일 투쟁의 의지를 결의한 동맹이다.

설립 목적

7인 단지 동맹은 안중근 등 항일투사들이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비밀 결사로 조직되었다.

현황

안중근 등 단지 동맹에 참여한 이들은 중국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지낸 최재형 밑에서 지원과 훈련을 받았으며, 1909년 3월 일명 단지회(斷指會)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였다.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와 매국노 이완용에 대한 암살 계획을 세우고, 3년 이내에 이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자살로써 국민에게 속죄하겠다며 왼손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 피로써 항일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안중근은 이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뤼순의 일본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10년 3월 26일 순국했다. 안중근은 자신 외에 단지 동맹 가담자가 11명이 있다고 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7인 단지 동맹을 주도한 안중근 등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였으며, 이후 한국 민족 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참고문헌
  • 한국 독립유공자 협회, 『러시아 한인 회와 민족 운동사』(교문사, 1994)
  • 김삼웅, 『안중근 평전』(시대의 창, 2009)
  • 박환, 「러시아 연해주에서의 안중근」(『한국 민족 운동사 연구』30, 한국 민족 운동사 학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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