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한자 基督敎
중문 基督教
분야 역사/근현대|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기독교 만주 지역 조선인 마을에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된 것은 조선내 기독교 조직이 갖추어진 1910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장로교와 감리교단이 선교를 주도한 결과 각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조선인 기독교인에 의한 민족 운동 단체도 조직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73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 9월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4년
정의

일제 강점기 재만 한인 사회에서 민족 운동을 주도한 그리스도교 가운데 하나.

개설

조선 지역 내 대한 기독교의 전파는 일찍이 1816년 영국 출신의 홀(Hall,B.)에 이어, 1832년 독일 태생의 구츠라프(Gutzlaff,K.F.A.), 그리고 1866년 영국의 토머스(Thomas,R.), 1867년 스코틀랜드의 윌리암슨(Williamson,A.) 등에 의해 꾸준히 시도되었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가 없이 이어지던 중, 1873년 조선 선교에 뜻을 두고 만주 통화현 고려문에 진출한 스코틀랜드의 일치 자유 교회 출신 로스(Rose,J.)와 그의 매부 매킨타이어(McIntyre,J.)가 의주 출신의 청년 학자 이응찬(李應贊)·이성하(李盛夏)·김진기(金鎭基)·서상륜(徐相崙) 등을 만나, 그들에게 성서를 가르치면서 함께 성서 번역이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번역 작업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1876년에 기독교에 입교하였는데, 이는 만주 지역 최초의 기독교 포교 성과였다. 이후 조직화되지 못했던 기독교는 국내의 영향을 받으면서 각지에 교회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만주 지역에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포교가 이루어졌다. 장로교는 1914년 국유치(鞠裕致)와 현대선(玄大宣) 목사가 흥경으로 이주하여 만주 지역의 한인을 대상으로 전도 활동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1920년에는 남만 노회, 1921년에는 간도 노회가 각각 조직되었으며 간도 노회는 1925년 동만 노회로 개칭되었다. 남만 지역에는 이양자(裡楊子)교회를 비롯하여 11개 교회, 동만 지역에는 용정시 교회를 비롯하여 24개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감리교의 경우, 1908년 9월 이화춘 목사가 용정으로 이주하면서 이주 한인에게 전도 활동을 했다. 감리교에서는 1910년 손정도, 배향식 목사를 북만과 남만에 파견하여 많은 교회를 설립하였고, 1920년에는 미국 감리 교회 조선년회 만주 지방회가 조직되었다. 1939년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동만 지역에는 용정 교회를 비롯하여 27개 교회, 북만 지역에는 사평가 교회를 비롯하여 22개 교회가 설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만주 기독교는 은진중학교 등 각지에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교육 운동을 주도하였고, 1919년 3월 13일 천도교, 대종교와 함께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천도교와 함께 대한 국민회 등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민족 운동을 주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에도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롯하여 조선족 사회의 중심적인 종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 유이민사』(현기환, 어문각, 1967)
  • 『동아 일보』
  • 『조선 일보』
  • 『시대 일보』
  • 『연변 문사 자료』(연변 문사 자료 위원회, 1988)
  • 서굉일,「1910年代 北間島의 民族 主義 敎育 運動 1; 基督敎 學校의 敎育을 中心으로」, (『白山 學報』29, 백산 학회, 1984)
  • 서굉일,「1910年代 北間島의 民族主義 敎育 運動 2; 基督敎 學校의 敎育을 中心으로」,(『白山 學報』30·31, 백산 학회, 1985)
  • 서굉일,「북간도 기독교인들의 민족 운동 연구; 1906~1921」, (『한국 기독교와 민족 운동』, 보성, 1986)
  • 서굉일,「日帝下 北間島 基督敎人들의 民族 敎會 形成에 關한 硏究(1906~1921)」, (『國史館 論叢』 84, 國史 編纂 委員會,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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