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광촌[상지시]

한자 鮮光村[尙志市]
중문 鲜光村[尙志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장수향 선광촌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가구수 106세대
인구[남,여] 540명
개설 시기/일시 1984년
변천 시기/일시 1958년
변천 시기/일시 2003년
변천 시기/일시 2011년
정의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장수향에 속하는 조선족 마을.

개설

선광촌[상지시 장수향]은 장수향 정부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2㎞ 떨어져 있다. 동쪽은 장수촌, 남쪽은 동흥둔, 서쪽은 복수촌, 북쪽은 장수촌 서구둔과 맞닿아 있다.

형성 및 변천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인들이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조선 이주민들이 증가하면서 조선 공산당을 비롯한 여러 반일 조직들이 반일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29년 초여름 한족 지주가 용수권을 독차지하고 조선 농민들에게 물을 주지 않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선 공산당 기층 조직의 지도부로 활동하였던 장무봉, 김승산 등은 이주민들을 조직하여 시위를 벌여 조선 농민들의 용수권 쟁취 투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하동의 대 시위에도 참가하기도 하였다.

1936년 이후 조선 이주민들이 대폭 늘어나 선광둔 주위에만 40여 세대 조선인들이 이주해왔으며 50여 ㏊의 수전을 개간하였다.

1948년 장수향이 연수현으로부터 상지현으로 귀속됨에 따라 선광촌은 상지현 제6구의 소속촌이 되었고, 토지 개혁 운동을 거치면서 조선 이주민들은 토지를 부여 받아 땅의 주인이 되었다.

선광촌[상지시 장수향]은 선광, 도향 두 개의 툰으로 행정구역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선광둔은 장수둔의 조선족, 한족이 잡거하는 한 개 자연 마을로서 장수둔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족이 10여 세대뿐이었고 1953년 동흥둔[한족]과 합쳐 한 개 초급사로 꾸려져 도향사라 하였다. 1958년 인민공사화 되면서 소수 민족 자치권을 존중하여 장수둔의 조선족과 도향둔을 합병하여 선광대대로 조선족 단독 행정구역으로 확정하였다. 1984년 선광촌으로 개칭 되었으며 2003년 장수촌[한족촌]과 합병하여 장수촌 소속둔이 되었으며 행정촌이 소실되었다.

그 후 이곳 조선족들은 한족촌에서 다시 분리되어 나와 단독 행정촌으로 회복할 것을 중국 정부에 제기하여 2011년에 정부의 비준 하에 단독 행정촌인 선광촌으로 회복되었다.

현황

선광촌[상지시 장수향]은 2003년 현재 106세대 54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104.2ha의 경작지를 소유하고 있다.

참고문헌
  • 상지시 조선 민족사 편집 위원회, 『상지시 조선 민족사』민족 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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