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三聯村[尙志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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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 三联村[尙志市]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모아산진 삼련촌 |
시대 | 현대/현대 |
성격 | 조선족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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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남,여] | 545명(조선족 인구 470명), 2008년 |
흑룡강성(黑龍江省) 하얼빈시[哈爾濱市] 상지시(尚志市) 모아산진(帽兒山鎮)에 위치한 마을.
삼련촌은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모아산진 안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은 대동촌(大同村), 서쪽은 대방자촌(大房子村), 남쪽은 황니하(黃泥河), 북쪽은 아성하(阿城河)와 인접해 있으며 중국국가 고속 도로 G10이 마을 옆을 지난다.
삼련촌은 해방 후 중국 정부의 관심 아래 수리 여건이 개선되면서 토지 확장에 집중하여 1960년 초부터 1970년에 이르기까지 원정대를 조직하는 등의 방법으로 약 27ha의 수전을 개간하였다.
삼련촌은 1995년까지도 줄곧 직파[直播, 농지에 직접 씨앗을 뿌려 벼를 재배하는 논농사 방법] 위주였다가 1995년에 한육모 희식 재배 기술이 보급되면서 모내기를 하였는데 한때는 ha당 수확이 8,000㎏에 달했다.
모아산진 삼련촌은 1920년 김차진이 인하촌(麟河村)의 지주 송가(宋家)의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점차 조선인 이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1935년 이후 조선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하서(河西)에서 66ha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수전을 경작했고, 철북에서 30ha, 동평산장대원, 태평촌, 동평산철남, 동창 등지에서 수전을 개간하였는데 모두 합치면 200ha에 달한다.
이 시기에 조선인들은 모두 소작농으로 지주와 반작했다. 삼련촌이 있는 모아산진은 원래 길림성 쌍성현의 제9구였는데 1937년에 주하현[현 상지시]에 귀속되었다.
1939년 2월 일본 개척단이 삼여, 풍수, 홍포, 대방자 등 지역에 무장 이민단 명의로 들어와 조선인들이 경작하던 땅을 모두 빼앗아 조선인들은 일본 식민 통치하의 소작농으로 갖은 압박과 착취를 받으며 굶주림에 시달렸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후 삼련촌 조선인 중 일부는 조선으로 혹은 남만으로 떠나고, 여러 지방에 분산되어 살던 사람들이 모두 모아산진 내로 이주해 와서 새로운 조선인 마을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