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가요

한자 抗日 歌謠
영문 Anti-Japanese Songs
중문 抗日歌谣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한민족이 부른 독립운동 애국·계몽 가요.

개설

독립운동의 노래 중에서 종류가 가장 많고,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가 항일 가요이다. 그렇지만 실물이 전해지는 바가 적고, 그마저도 창가와 독립군가의 일부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또한 항일 가요는 작곡자가 누구인지 잘 드러나지 않고, 악보가 보급된 것이 아니라 실제 가창과 의식 고양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작곡자를 밝히는 작업이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이 작곡한 항일 독립 가요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내용

1910년 경술 국치를 전후하여 만주로 망명한 독립 지사, 의병들은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하고 곳곳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항일 가요의 초기 곡은 의병 시기에 불린 것으로 「의병 창의가」가 있다. 「의병 창의가」는 대중적인 전파력을 가진 노래이다. 이 노래는 「새야 새야」라는 민요에 가사를 붙여 부른 노래이다.

1910년 이후에는 창가풍의 애국적인 노래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1914년 광성 학교에서 출간한 『최신 창가집』에 실린 152곡을 분석해 보면 당시 북간도 지역에서 부르던 독립운동가와 계몽 운동가의 성격을 살펴 볼 수 있다. 152곡 중 36곡은 본래 있던 노래 선율에 가사를 바꿔 부른 것이며, 나머지 116곡 중 민요풍의 노래는 11곡, 찬송가풍의 노래는 50여곡으로 40%가 찬송가에서 영향을 받은 곡이다.

초기의 항일 가요는 우리 민요에 새로운 가사를 붙인 것과 새로 작곡한 가요가 있다. 1920년대는 계몽 가요, 민요 또는 외국 민요에 가사를 붙인 것이 많으며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의 항일 가요에는 민요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거나 새로 작곡한 노래들이 많았다.

중국 동북 지역에서 가장 많이 부른 항일 가요는 「유격대 행진곡」 이다. 1910년대 독립군이 부르던 「용진가」에 1933년 장백산 지구에서 활동한 유격대에서 새로운 가사를 붙인 것이다.

우리 민요에 새로운 가사를 붙인 항일 가요는 「농촌 소비에트」(「뽕타령」), 「광복군 아리랑」(「밀양 아리랑」), 「광복군 석탄가」(「사발가」), 「호미가」(류동호 작사, 평북 민요), 「미나리 타령」(「도라지」) 등이 있다. 「사향가」(김철남 작사·작곡), 「망향가」(장진영 작사·작곡), 「망향곡」(이범석 작사·작곡), 「국기가」(이범석 작사, 한유한 작곡) 등은 조국을 떠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반일 정서를 표출한 노래이다.(민간: 1337-42)

1919년 김원봉 등이 길림에서 ‘조선 의열단’을 조직하였으며, 1920년 40여 개의 독립군 부대가 편성되고 1921년 10월 21일 화룡현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800명이 전사하였다.

이 시기의 항일 가요로는 「용진가」, 「독립군가」, 「의병 격중가」, 「의병 창의가」, 「자유가」, 「소년 모험 행진가」, 「승리 행진가」, 「독립군 행진가」, 등이 유행하였다. 독립군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들로는 「이향가」, 「작별의 노래」, 「사향가」, 「고향 이별가」, 「망향가」 등이 있다. 신흥 무관 학교는 3,500명의 독립군 간부를 양성한 군관 학교였다. 이 학교의 「신흥 무관 학교 교가」 또한 널리 불린 노래로서 그 영향력이 컸다.(중국 조선족 음악 연구회, 『중국 조선족 20세기 음악 문화』 31쪽)

공산주의 계통의 항일 음악으로는 「유격대 행진곡」, 「총동원가」, 「결사전가」가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이다. 「여성 해방가」는 남녀 평등을 주장하면서 여성들도 항일 유격대에 참가하여 싸우는 유격대원으로 지원하게끔 하였다. 애국 지사를 추도한 「빨치산 추도가」, 「추도가」, 「유격대 추도가」 등도 있다. 항일 가요 중에는 「십진가」가 많았는데 이는 일본군과 지주들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반항 정신을 노래한 것이다.

소비에트 구역에서는 학교를 세우고 구국 운동을 선전하는 일환으로 동요가 창작되었다. 「피오넬가」, 「소년군가」, 「어린 동무 노래하자」, 「아동단가」, 「아동가」, 「유희가」, 「어린이가」, 「소년 애국가」 등이 널리 불렸다. 통화현 배달 학교에서 불렀던 창가로는 「독립 전선가」, 「용진가」, 「소년군가」, 「독립군가」, 「소년 모험 행진곡」 등의 독립운동가와 「10월 혁명가」, 「레닌 찬가」, 「십진가」, 「옥중가」, 「아동단가」 등의 항일 가요가 있다.

동북의 연변, 요령성, 흑룡강성에서 수집하여 출판한 항일 가요는 400수가 있다. 1939년에 정율성은 「팔로군 대합창」(공목 작사, 한문 가사)을 작곡하였는데 이 곡은 「팔로군 군가」, 「포병가」, 「밤 보초병 노래」, 「팔로군 행진곡」, 「돌격가」, 「유쾌한 팔로군」 등으로 구성되었다. 「팔로군 행진가」는 국민들에게 널리 보급되어 후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가 되었다.

조선 의용군은 최후의 항일 가요 「조국 향해 나가자」(정율성 작사 작곡)를 불렀다. 1938년 ‘조선 의용대’가 창립되었는데 조선 의용대에서는 「중국의 광활한 대지위에」(이정호 작사·작곡), 「혁명가」(이정호 작사·작곡), 「최후의 결전」(「바르샤바 행진곡」을 개편, 윤세주 작사) 등이 창작되었다. 1941년 「중국의 광활한 대지위에」는 「조선 의용군 행진곡」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1944년 조선 혁명군 군사 학교에서 추석 만회를 준비하면서 「호메가」(평안도 민요에 유동호가 작사), 「미나리 타령」(「도라지」 곡에 이화림이 작사) 등이 창작되었다. 조선 의용군은 「기쁨의 아리랑」, 「조선 의용군 추도가」(김학철 작사, 류신 작곡), 「의용군과 팔로군」(중국 강서 민요에 가사를 부침), 「의용군 송가」, 「닐리리 타령」(민요에 작사를 한 것) 등의 노래를 불렀다.

대표적인 항일 가요 작곡가로는 중국 노동 홍군의 최초 음악가인 최음파가 손꼽히는데, 그는 「노동극 사사가」를 작곡하였다. 또한 작곡가 한유한[1910∼1996]은 「신혁명 군가」(1936), 「전사가」(1939), 「아리랑」(1940), 「광복군 군가집」(1940), 「국기가」(이범석 작사), 「압록강 행진곡」(박영만 작사)을 작곡하였고, 작곡가 정율성[1914∼1976]은 「유격전가」, 「여성 전투가」, 「연안송」, 「10월 혁명 행진곡」, 「항전 돌격 격동가」, 「팔로군 행진곡」(「중국 인민해방군 군가」), 「조선 인민 행진곡」 등을 작곡하였다. 「조선 인민 행진곡」은 후에 「조선 인민군 군가」가 되었다.

항일 가요는 일제 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에 항쟁하기 위한 정신 무장을 위해 생긴 소중한 역사 문화유산이다. 우리는 후세들에게 애국 선열들이 남긴 노래를 전승하며 민족 역사의 흐름을 이념적인 편견 없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국가 보훈처. 『최신 창가집』,(북간도 광성 중학교, 1914) : (국가보훈처, 1996)
  • 김보희,「북만주 지역의 독립운동 가요」(『한국 음악 연구』제43집, 한국 국악 학회, 2008)
  • 윤병석·김보희 외,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 가요」(『북간도 지역 한인 민족 운동』, 독립 기념관, 2008).
  • 중국 조선족 음악 연구회,『20세기 중국 조선족 음악 문화』(북경 민족 출판사, 2005)
  • 독립군가 보존회 편저, 『광복의 메아리』(독립군가 보존회, 1991)
  • 독립군 시가집 편찬 위원회, 『독립군 시가지-배달의 맥박』송산 출판사, 1986
  • 한국 독립운동사 정보 시스템(http://search.i815.or.kr/Main/Main.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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