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高麗 樂劇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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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Goryeo Music Drama Ensemble |
중문 | 高丽乐剧团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흑룡강성 목단강시 해림시 신안진 |
시대 | 현대/현대 |
성격 | 예술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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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 조두남 등 |
설립 시기/일시 | 1945년 9월 |
해체 시기/일시 | 1948년 12월 |
최초 설립지 | 흑룡강성 해림시 신안진 |
1945년 9월 흑룡강성(黑龍江省) 해림시(海林市) 신안진(新安鎭)에서 창단되어 1948년 12월까지 활동했던 조선족 민간 공연 단체.
고려 악극단은 고려인회 문교부의 선전 기구로서 고려 청년 동맹에서 구체적인 지도를 맡았고 후일에 민주 대동맹이 창립되자 그 산하 조직인 민주 청년 동맹에서 직접 지도하였다.
창단 직후인 그해 10월부터 공연을 시작하였다. 고려 악극단은 목단강의 예술인들을 초빙했는데 노배우로서 각본도 쓰고 연출도 보던 조춘희씨 부부와 그의 딸 조성진, 이름난 연극 배우 김산·주상룡 부부, 연극계에서 명성이 높던 소도구리석, 해방 직전 극단을 거느렸다는 안창조 4형제와 부인들, 몇 분의 가수와 무용수 등을 모셔왔다. 조춘희의 부인과 딸은 극뿐만 아니라 신민요도 잘 불렀다. 주상룡은 북을 잘쳤는데 그의 부인은 노래를 잘 불렀다.
운영 경비는 군중들의 희사금과 입장권 판매금으로 해결하였고 식량은 고려 청년 동맹의 주선으로 적산물 창고에서 공급받았다. 색스폰·트럼펫·대소고 등은 새로 구입하였고 손풍금은 안 의사가 두고 간 것이였으며 기타·바이올린은 배우들 개인 것이었다. 무대 설비로 면막·배경·세트 등을 모두 새로 만들었고 주택도 새롭게 수리하였다. 고려 악극단은 목단강 지역은 물론 연변에서도 경연 무대를 펼쳤다.
고려 악극단은 신민요·유행가·창작극 등을 발표하였다. 고려 악극단에서 작곡을 담당하였던 김종화의 회상기에 기록된 프로그램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행가로는 「알뜰한 당신」·「목포의 눈믈」·「아리랑 낭낭」·「어버님전상서」(개사)·「봉선화」·「봄맞이」·「장모님전상서」·「조선 팔경가」·「앞강물」·「닐리리야」·「능수버들」·「한강수 타령」·「처녀 총각」·「나그네 설움」·「백마강달밤」·「낙화유수」·「애수의 소야곡」·「동북의 나팔수」·「고향생각」(조두남 곡)·「새출발」(조두남 곡)·「라 쿰비르씨타」·「양산도」·「노들강변」 등이었다.
무용곡으로는 「버드나무 아래서」·「사막에서」·「먼동이 터온다네」·「처녀 총각」 등을 연주했고, 기각곡으로는 「동라지」·「방아 타령」 등의 변주곡이 연주되었다,
창작곡으로는 김종화가 작곡한 곡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동북 인민 행진곡」(윤해영 작사)·「동북 인민 자위군 송가」(윤해영 작사)·「고려 극악단 단가」(윤해영 작사)·「임해전 안압지에」(권녕일 작사)·「불망의 글자」(권녕일 작사)·「꿈이면 깨지 말 것」(권녕일 작사)·「해저문 마을」(윤해영 작사)·「봄소식」(김종화 작사)·「우리 아기」(김종화 작사)·「낙화삼천」(조선문학전집 가사) 등이었고, 가극은 「북방에 종이 울린다」(권녕일 대본, 김종화 곡)·「기러기」(권녕일 대본 김종화 작곡)·「며느리의 교훈」 외 다수의 곡을 공연하였다.
고려 악극단은 1945년 9월 해방 직후 중국흑룡강성 신안진에서 조두남이 창단하여 민족 예술절에 참가하면서 비롯되었다. 조두남과 함께 연주 생활을 하던 권영일(트럼펫)·조창학(바이올린)·김종화(기타) 등이 참여하였다. 고려 악극단은 창작부·연출부·음악부·대외 관계부를 두었고 악대·성악·무용·연극배우 40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단장 권녕일, 총무 조창학, 창작부장 조춘희, 음악부장 김종화, 대외부장 안창조, 연출 김산서 등이 맡았고, 무대 주상룡, 도구 리석, 미술 김기언, 리더 가수는 남수억이었으며, 악대는 권녕일(작곡·편곡·트럼펫·색소폰·클라리넷)·김종화(작곡·편곡·기타·손풍금)·조창학(바이올린)·주상룡(북)·트롬본 연주자 등으로 구성되었다. 성악은 서경자·김순자·리소혜·최은실·고금순·안창범·남수억 등이 활동했고, 연극은 조춘희·김산석·주상룡·안찬조·조창학 등의 부부가 출연하였다.
고려 악극단은 조선족 최초로 전문 예술인에 의해 결성된 공연 예술 단체이다. 예술단의 활동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많은 창작곡을 발표하였다. 특히 소수 민족의 조선족 문학가·음악가들이 조선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민족 예술 활동을 펼쳤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조선’보다는 ‘고려’라는 명칭을 쓴 것이 특이한 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