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식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작곡가
성별
본관 길림성 용정시
대표경력 국가 1급 작곡가, 중국 음악가 협회 회원, 중국 조선족 음악 연구회 부회장, 연변 음악가 협회 부주석, 명예 주석
출생 시기/일시 1935년 7월 19일
몰년 시기/일시 2001년 10월 14일
출생지 용정시 덕신향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한 현대 중국 조선족의 대표적인 작곡가.

활동 사항

허원식[1935~2001]은 1935년 7월 19일 길림성 용정시 덕신향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소학교 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흥취를 가지고 있었으나 변변한 음악 교원 한명 없는 덕신골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허원식은 연변 사범 학교에 입학하여 음악 공부에 전념하였다. 1953년 7월, 연변 사범 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생 중 유일하게 허원식만이 연변 가무단의 성악 배우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허원식의 마음은 작곡에 있었다. 그는 성악 이론보다 작곡에 관계되는 서적을 더 많이 탐독하였다. 이런 노력으로 허원식은 1956년 9월에 심양 음악 학원 작곡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허원식은 5년간 작곡을 전공하면서 작곡에 대한 학문 소양을 체계적으로 쌓았다. 그가 심양 음악 학원에서 공부할 때 반‘우파’투쟁으로 인한 가정 풍파는 23세의 젊은 인생과 유망한 전도를 위협하였다. 그는 불의에 맞서 지조를 지키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였다.

허원식은 1961년 9월 심양 음악 학원 작곡학부의 편곡법 교원으로 임용되었다. 1963년 1월에는 연변 가무단으로 자리를 옮겨 창작실 부주임으로 활약하면서 관현악곡·가극·극 음악·가요·무용 음악 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창작, 발표하였다. 허원식은 국가 1급 작곡가이며, 중국 음악가 협회 회원, 중국 조선족 음악 연구회 부회장, 연변 음악가 협회 부주석, 명예주석을 역임하였다.

저술 및 작품

허원식은 관현악곡·가극·극 음악·가요·무용 음악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1954년에 처녀작을 발표한 뒤 바이올린 협주곡 「나의 고향」, 교향곡 「아침 해 솟는다」 등 4부, 기악곡 「저녁 노을」 등 16부, 교성곡 「두만강의 노래」 등 많은 기악 작품과 무용곡을 창작하였다.

허원식의 작품 중에서 극 음악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가 창작한 극 음악들로는 1953년에 쓴 가곡 「고령감의 꿈」, 1964년에 쓴 가극 「조만근」, 1965년에 쓴 연극 「산촌의 소나기」의 음악, 신창극 「룡강송」의 음악, 1978년에 쓴 연극 「장백의 아들」의 음악, 1980년에 쓴 연극 「눈속에 핀 꽃」의 음악 등 무려 6부에 달한다.

허원식은 1950년대에는 가요 「북산처녀」(최정연 작사) 등 10여 수, 1960년대에는 「벌판에 붉은 해 솟았나」(이행복 작사) 등 가요와 극음악 16수, 1970년대에는 「백산의 붉은 꽃」(한원국 작사) 등 가요 20수, 1980년대에는 「사랑하는 내 나라」(김응룡 작사) 등 가요 18수, 1990년대에도 많은 가요들을 창작, 발표하였다.

1983년에는 66수의 음악 작품으로 묶어진 가곡집 『꽃피는 우리 살림』을 출간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 예술 종합 학교 한국 예술 연구소, 『한국 작곡가 사전』시공사, 1999
  • 중국 조선족 음악 연구회, 『20세기 중국 조선족 음악 문화』(민족 출판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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