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황훈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호른 연주가, 작곡가
성별
본관 충청북도 괴산
대표경력 중국 소수 민족 음악 학회 이사
출생 시기/일시 1933년 4월 21일
몰년 시기/일시 1990년 8월 20일
출생지 충북 괴산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활동한 현대 조선족 음악가로 호른 연주자이며 작곡가.

활동 사항

리황훈[1933~1990]은 충청북도 괴산군 백양리에서 출생하였다. 8세 때 부모를 따라 중국길림성 교하현 오림 탄사지에 이주하여 시골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48년 화룡 중학교에 입학하여 학생회 음악 부장, 악대 지휘를 맡았다. 1951년 10월 조선 인민군 군악대에 입대하여 「직동령」, 「압록강」, 「1211고지, 1052고지에로」, 「포병 행진곡」 등 전시 가요들을 창작하였다.

1954년 중국으로 돌아와 연변 가무단의 호른 연주원, 길림성 민족 문공단 창작원, 연변 예술 집성 판공실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1957년부터 「초병의 노래」, 「두만강 떼목군」, 「풍년 가을이 왔네」, 「연변 목가」 등 300여 수의 가요를 작사, 작곡하였다. 1959년부터 연변 민간 문예 연구조에 참여하여 중국요령성·길림성·흑룡강성 등 지역에서 민족 음악 수집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여 800여 수의 민간 음악을 수집하였다. 그는 중국의 ‘문화 대혁명’ 기간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민간 음악 자료들을 보존하여 ‘문화 대혁명’ 종식 이후 민간 음악의 재생에 기여하였다. 리황훈은 1980년부터 수집한 민간 음악을 본격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면서 「조선민족 민간 음악의 선율 음정 특점」, 「판소리 음악 개황」, 「시조 음악에 대한 고찰」, 「노동 가요의 형성 체계와 표현 성격」, 「조선족 음악 장단 개술」, 「조선족 장단 연주법」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리황훈은 1983년 길림성 문화청, 중국 음악가 협회 길림 분회,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 정부로부터 민간 음악 집성 사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예 증서를 수여받았다.

리황훈은 중국 조선족 음악가들 가운데서 민간 음악을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수집하였다. 그는 중국의 건국 초기와 개혁개방 시기의 민간 음악 수집을 이어준 장본인이다. 또한 개혁개방 시기에 민간 음악 집성이 중국의 연구 과제로 부상되자 조선족 민간 음악을 여러 권의 책으로 정리하여 출판하는 데 초석을 다졌다. 리황훈은 조선족 위원으로 유일하게 중국 민간 가곡 집성 전국 편집 위원회에 참여하였다. 그는 중국 음악 연변 분회 회원, 중국 소수 민족 음악 연구회 회원, 연변 음악가 협회 상무 이사 겸 민족위원회 주임을 역임하였다.

저술 및 작품

리황훈은 「직동령」, 「압록강」, 「1211고지, 1052고지에로」, 「포병 행진곡」, 「초병의 노래」, 「두만강 떼목군」, 「풍년 가을이 왔네」, 「연변 목가」 등 300여 수의 가요를 작사, 작곡하였다. 또한 「조선민족 민간 음악의 선율 음정 특점」, 「판소리 음악 개황」, 「시조 음악에 대한 고찰」, 「노동 가요의 형성 체계와 표현 성격」, 「조선족 음악 장단 개술」, 「조선족 장단 연주법」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상훈과 추모

리황훈은 1983년 길림성 문화청, 중국 음악가 협회 길림 분회,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 정부로부터 민간 음악 집성 사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예 증서를 수여받았다.

참고문헌
  • 한국 예술 종합 학교 한국 예술 연구소, 『한국 작곡가 사전』시공사, 1999
  • 중국 조선족 음악 연구회, 『20세기 중국 조선족 음악 문화』(민족 출판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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