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옥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길림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작곡가, 음악 지도자, 공훈 예술가
성별
대표경력 연변 가무단 단장
출생 시기/일시 1926년 6월 14일
몰년 시기/일시 1981년 10월 13일
출생지 경상남도 통영군
묘소 평양
정의

1950년대 후반기와 1960년대 요령성과 길림성 등지에서 활동한 조선족 작곡가이자 음악 지도자.

활동 사항

정진옥[1926~1981]은 1926년 6월 14일 경상남도 통영군에서 어부 정음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고 어머니는 소작농으로 일하였다. 정진옥의 부모는 얼마 되지 않은 밭을 경작하면서 여인숙도 운영하여 가난한 살림을 유지해 나갔다. 정진옥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이 부르는 민요를 들었으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였다. 목소리가 아름답고 감칠맛 있게 노래를 잘 불러서 어른들의 칭찬을 들었다.

정진옥은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중국에 들어와서 1939년 봄에 요령성 무순시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1년 봄 무순시 보통학교 고등과를 졸업한 후 봉천[지금의 심양] 남만 공업 학교 전기과에 입학하였다. 공업 학교 시절 외국인 선교사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후 1944년 4월부터 봉천 방송국 악공, 무순 협화 악단 지휘자로 있었다. 1945년 9월부터 무순 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원, 지휘, 무순 중소한 우호 협회 악단의 음악 지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정진옥은 1946년 2월부터 1949년 6월까지 조선 의용군 제1지대[후에 동북 민주 연군 이홍광 지대로 개칭] 선전대 대원, 군악대 대장 등을 지냈고, 1946년 7월부터 1952년 6월까지는 조선 인민군 제6사단 군악대 대장[2개월간], 조선 인민군 협주단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자동차 운전사의 노래」[심봉원 작사], 「우리 님 영웅 되셨네」[박삼규 작사] 등 가요를 작곡하였다. 중국장춘에 와서 예술 영화 「향토를 지키는 사람」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정진옥은 1952년 10월부터 1966년까지 연변 가무단에서 음악 교원, 부단장, 단장 등 직무를 역임하였다. 1966년 10월 조선 인민군 협주단, 평양 예술단의 작곡가로 활동하는 기간에 가극 「청춘 과원」 등을 작곡하여 공훈 예술가가 되었다.

195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중기까지 중국 조선족 음악 분야에서 음악 창작과 여러 가지 음악 활동에 참가하였다. 정진옥은 지도자로서 수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여 음악 발전을 위한 튼튼한 토대를 닦았다. 연변 가무단 단장, 중국 음악가 협회 상무 이사, 중국 음악가 협회 연변 분회 주석으로 활약하였으며, 1981년 10월 13일 평양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정진옥의 창작 활동은 전쟁 시기[중국의 국공 내전과 한국 전쟁]와 평화 시기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정진옥은 20살 되던 1946년 초에 참군하여 선전대의 문예전사가 되었으며, 1949년 10월 1일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후 많은 작품을 창작하였다. 「자동차 운전사의 노래」[심봉원 작사], 「우리 님 영웅 되셨네」[박삼규 작사] 「향토를 지키는 사람」, 1952년∼1966년 교성곡 「장백의 노래」[김철 작사), 독창곡 「처녀의 노래」[최정연 작사], 대중 가요 「아름다운 나의 고향」[최정연 작사], 「연변 타령」[임효원 작사], 「모내기 타령」[장동운 작사], 가극 「청춘 과원」[집체작], 관현악 「승리」, 가극 「광영패」[최정연 대본], 연극 음악 「민주 연군 오는 날」[최정연 대본], 합창 「지뢰수 조성두 용사」, 가요 「리홍광 지대의 노래」, 「근거지 건설의 노래」, 「심양 건설의 노래」 등을 창작하였다. 관현악 「승리」는 전투에서 최후 승리를 거둔 영웅 형상을 음악화한 것으로 민족 풍격을 살리면서 외국 관현악의 창작 기법을 동원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 예술 종합 학교 한국 예술 연구소, 『한국 작곡가 사전』시공사, 1999
  • 중국 조선족 음악 연구회, 『20세기 중국 조선족 음악 문화』(민족 출판사, 2005)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