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주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민간 가수
성별
본관 평안북도 순천시
출생 시기/일시 1914년 7월 21일
몰년 시기/일시 1992년
출생지 평안북도 순천시
정의

주로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무대로 하여 서도 소리의 전통적 특징을 살린 민간 가수.

활동 사항

조종주[1914~1992]는 평안북도 순천시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에 남다른 흥미를 가졌으며, 11살 때부터 노래 부르기에 열중하여 서도 소리에 상당한 실력을 쌓았다. 조종주는 명절이나 마을에 결혼식이 있으면 노래를 불러 인기를 모았다. 14세부터는 집에서 농사 일을 도우며 농업 노동과 관련된 민요들을 많이 섭렵하였다. 18세부터는 일본인들이 부설하던 조선평원선 철도 부설 노동에 참가하여 노동 소리와 같은 일 소리를 많이 불렀는데 목청이 좋고 메김 소리에 뛰어나 선소리군으로 활약하였다. 21세 때는 소작농으로서 마을의 모임이나 술집의 초청으로 타령이나 서도 잡가를 불렀다.

29세 때인 1943년에 일제의 근로 봉사를 피하여 중국길림성 안도현 북흥향에 이주하여 농사를 지었다. 1954년에 룡정현 태양향에 이주하였다가 다시 조양천진 합성촌으로 이주하였다. 조종주는 1958년 룡정현 민간 예인 대표로 연변 제1차 민간 예인 가수 대회에 참석하여 「물레 타령」, 「배 노래」, 「수심가 엮음」 등 민요를 불러 표창을 받았다. 1962년의 연변 제2차 민간 예인 콩쿠르를 계기로 1963년에는 연변 가무단 민요 교원으로 초빙되어 반년 동안 연변 가무단 성악 배우들에게 많은 민요를 가르쳤다.

조종주는 1979년 북경 향산에서 있은 전국 소수 민족 민간 가수 대회에 참가하여 「목도 소리」, 「풍구 타령」등 민요를 불러 관중들과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1983년과 1988년에는 민간 음악 집성 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길림성 문화청과 중국 음악가 협회 길림 분회 그리고 국가 문화부, 국가 민족사무위원회 전국 예술 과학 규획 영도 소조로부터 수상하였다. 1987년과 1988년에는 연변 문학 예술계 연합회와 중국 민간 문예가 협회 길림 분회로부터 ‘민간 가수’ 칭호를 수여받았다.

조종주가 남긴 일 소리, 타령, 잡가, 풍속 의식가 및 「배뱅이굿」과 같은 200 여 수의 소중한 민간 음악 유산은 장르가 넓고 형식이 다양하며 가창력이 뛰어나 서도 소리의 전통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참고문헌
  • 중국 조선족 음악 연구회, 『20세기 중국 조선족 음악 문화』(민족 출판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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