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작곡가, 지휘자
성별
대표경력 중국 음악가 협회 연변 분회 부주석
출생 시기/일시 1926년 12월 14일
몰년 시기/일시 2002년 6월 30일
출생지 길림성 용정시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에서 출생한 중국 조선족 음악 작곡가 겸 지휘자.

개설

박우는 1926년 12월 14일, 길림성 용정시에서 태어나 어릴 때 저명한 동요 작곡가 윤극영의 부인인 오인경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해방 초기부터 성악 배우, 작곡, 합창 지휘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여 중국 조선민족 음악의 작곡가이면서 합창 지휘자로 20세기 중국 조선민족 음악에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1. 성장과 학업

박우의 집에는 어릴 때부터 축음기와 많은 레코드가 있었고,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 형제들도 음악을 즐겼다. 둘째형은 오케이레코드사에서 주관한 성악 콩쿠르에서 1등상을 받았다. 여동생도 노래를 잘 불렀고, 후에 조선 인민군 협주단의 이름난 독창 가수가 되었다.

박우는 소학교 때 독창도 하고 합창대의 꼬마 지휘로도 출연하였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청진 철도 학교를 다녔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편 배달을 하였다. 졸업한 후 용정에 돌아와 용정역 구내 철도 연결수로 있으면서 기타를 사서 독학하였다.

박우는 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나서 본격적인 예술의 길에 들어 섰다. 1945년 11월 용정 연예대에 가입하여 4개월 정도 활동하였다. 1946년 3월 길동 보안군에 가입하여 길동 보안군 정치부 문공단의 배우가 되었다. 1947년 1월 길림성 사무청 소속 문공단의 배우가 되었다. 1948년 3월 연변 문공단의 배우가 되어 1952년 8월까지 활동하였다.

박우는 1952년 9월 심양 로신 문예 학원 음악 학부(후에 동북 음악 전과 학교로, 심양 음악 학원으로 발전) 작곡 전공에 입학하여 학생회 주석으로 활약하였다. 지휘반을 졸업할 무렵인 1956년 8월 박우는 북경에서 연변 가무단의 교향곡 「장백의 노래」의 지휘를 맡았다. 음악회가 끝난 후 박우연변에 돌아와 연변 가무단의 지휘가, 작곡가, 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 교수로 활동

1960년 연변 예술 학교에서 합창 지휘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합창대를 설립하였다. 1963년, 다시 연변 가무단에서 활동하였다. 1966년 하반기부터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자 5년 동안 지휘는 물론 작곡도 할 수 없었다. 1972년부터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으나 ‘4인 무리’의 ‘문화 독재주의’에 의하여 좌파 성향이 강한 작품을 쓰도록 강요당하였다. 그러나 「조국 위해 변강 지키네」(왕개평 작가, 1972년), 「해해 년년 풍년일세」(한동오 작사, 1973년) 등 좋은 작품들도 남겼다. 1976년 10월 4인 무리가 제거된 후 수많은 작품들을 작곡할 수 있게 되었다.

1979년 3월에 길림성 가무극원으로 전근하여 가극단 단장 겸 지휘로 임명되었다. 이로서 15년 남짓이 놓았던 지휘봉을 다시 잡았다.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어머니 조국」(송빈정 작사, 1980년), (「백산조곡」(송빈정 작사, 1983년), 「대삼림의 어린이」(송빈정 작사, 1984년), 「정다워라 내 고향」(김철 작사), 「농악 무곡」(1984년) 등을 작곡하였고 지휘하였다.

박우는 길림성 가무극원의 지휘 담당 외에 길림시 가무단 합창단, 청화 대학 합창단, 길림 예술 학원 합창단 등의 초청으로 합창 지휘를 담당하였다. 길림시에서 과외 지휘자 50여 명을 훈련, 양성하였다. 장춘시에서도 과외 지휘자 50여 명을 양성하였다. 그는 전문 예술 단체의 지휘를 담당하는 외에 과외 지휘자들을 양성하는 면에 많은 힘을 쏟았다.

박우는 중국 음악가 협회 회원이고 중국 음악가 협회 연변 분회 부주석으로 열성적인 음악 활동가였다. 1988년 6월 정년하였다. 1989년 한국국립 예술 극장 합창단을 지휘 공연하였다. KBS의 가요 종목도 지휘하였다. 1995년에는 북경에서 있은 ‘정률성 작품 음악회’의 합창 지휘를 담당하였다.

저술 및 작품

1970년대 「조국 위해 변강 지키네」(왕개평 작가, 1972년), 「해해 년년 풍년일세」(한동오 작사, 1973년), 1980년대 「어머니 조국」(송빈정 작사, 1980년), 「백산조곡」(송빈정 작사, 1983년), 「대 삼림의 어린이」(송빈정 작사, 1984년), 「정다워라 내 고향」(김철 작사), 「농악 무곡」(1984년) 등을 작곡하였다.

참고문헌
  • 중국 조선족 음악 연구회, 『20세기 중국 조선족 음악 문화』(민족 출판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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