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연변 문예』

한자 延邊 文藝
중문 延边文艺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51년 6월
정의

1951년 6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연변인민출판사에서 창간된 조선족 문학지.

변천과 현황

『연변 문예』는 1951년 6월 연변문련주위회에서 편집하고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 잡지이다. 『연변 문예』는 2011년 현재 중국 조선족의 대표 문학지이자 최고의 문화 지성지인 『연변 문학』의 전신이다.

『연변 문예』는 연변 문학 예술 주비위원회의 기관지로 창간 당시 16절지 크기에 분량은 54쪽에 1천 5백부가 발행되었다. 그런데 연변에는 1949년 창간한 종합 잡지 『문화』가 발행되었는데 25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문화』지를 간행한 설인의 시 「밭둔덕」이 소자산 계급 사상을 고취했다는 비판을 받은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 예술을 사랑하는 조선족 출신의 문학가 리욱·김창걸·김례삼·채택룡 등과 영화계와 무대 예술계에도 명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선전부장이었던 영화계 출신의 최채를 중심으로 조선족 문학지 출판을 위해 앞장섰다. 그 결과 1951년 한국어와 글로 된 문학지 『연변 문예』가 태어난 것이다.

그 뒤 여러 문제로 정간되었다가 1954년 초에 『연변 문예』지가 다시 복간되었다. 1956년 8월 연변작가협회가 성립되면서 『연변 문예』는 작가 협회 기관지가 되었다. 이에 문학 창작은 전례 없이 활기를 띠면서 발행 부수가 1만부에 이르렀다. 그런데 잡지사는 민족적 분위기의 이름으로 고치기로 하고 광범위하게 의견을 청취했다. 그때 유명한 소설 『암야』를 쓴 김창걸이 『아리랑』이란 이름을 제출하였다. 이에 『연변 문예』는 1957년 1월부터 1958년 12월까지 2년 동안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었다.

의의와 평가

『연변 문예』는 1950년대 반우파 투쟁과 대약진운동 당시 편협한 민족 산물이라고 낙인이 찍혀 제호를 비판받았고, 1960년대 문화 대혁명 당시 대부분 사라져버린 잡지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 연변조선족자치주지 편찬 위원회, 편 『연변조선족자치주지』,중화서방, 1996
  • 中国收藏热线 商店 三合轩(http://www.997788.com/10971/pr3_search_3_138422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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