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몽 일보』

한자 滿蒙 日報
중문 满蒙日报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길림성 장춘시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신문
관련인물 이경재, 김동만, 김우평, 이용석, 선우일, 염상섭, 박팔양, 전영우, 심형택
창간 시기/일시 1933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6년 11월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7년 10월
정의

1933년 신경(新京)[현 장춘(長春)]에서 창간되었던 친일 경향의 신문.

창간 경위

『만몽 일보(滿蒙日報)』는 1932년 만주국 설립 이후 1933년 8월 25일 일본의 지원을 받아 창간되었다. 친일 신문 『만선 일보(滿鮮日報)』의 전신이다. 사장은 이경재(李庚在), 편집국장은 김동만(金東晩)이었는데 김우평(金佑枰)이 편집국장이라는 기록도 있다. 1936년경에는 이경재가 물러나고 김동만이 사장이 되었다.

형태

『만몽 일보』는 일간이었는데 조간 혹은 석간으로 발행되기도 했으며, ‘종합판’, ‘간도 동만판(間島東滿版)’, ‘조선판’과 ‘간도’, ‘북만’, ‘남만’ 특집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만몽 일보』는 일제와 만주국 정부의 대변지로서, 오족협화(五族協和)[5족은 일본인·한족·조선인·만주족·몽고인을 가리킴]를 고취하고, 재만 조선인의 국민적 자각을 강화하며, 조선인의 황민화 를 적극 주도하여 왕도낙토(王道楽土)[왕도에 의해 다스리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땅]를 만드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사명관에 의해 보도 내용이 조작되었다.

구성/내용

『만몽 일보』는 「가정 문예」(혹은 「가정」), 「학술」, 「시사 해설」, 「일요일 어린이차지」(혹은 「어린이」), 「어린이 독물」(일본어) 등의 고정란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단편 소설, 연재 소설, 시 등의 문예 작품을 실었다. 지면의 많은 부분을 ‘레온 세안 크림’, ‘나이론 치마’, ‘에비오소 정’ 등과 같은 일본 상품 광고로 채웠다.

변천과 현황

『만몽 일보』는 1933년 창간 후 1936년 11월 용정에서 선우일(鮮于日)이 발행하던 『간도 일보(間島日報)』를 매수, 통합하여 『만몽 일보』 간도판을 만들었다. 이에 『만몽 일보』는 만주국 유일의 한글 신문이 되었다.

1937년 10월 이용석(李容碩)이 새로 사장에 취임하면서 제호를 『만선 일보』로 바꾸었다. 이 무렵의 편집 간부는 주필 염상섭(廉尙燮), 편집부장 박팔양(朴八陽), 사회부장 전영우(田榮雨), 정치부장 심형택(沈亨澤) 등 서울에서 언론계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다.

의의와 평가

『만몽 일보』는 일제의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발행된 정책 홍보 담당의 성격을 지닌 친일 신문이었다. 『만몽 일보』는 일제가 대륙 팽창주의 야욕을 채우는 데 일조한 신문이었다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장춘식, 『일제 강점기 조선족 이민 문학』(민족 출판사, 2005)
  • 정진석,「만주의 한국어 언론사 연구」(『관훈 저널』 47, 관훈클럽, 1989)
  • 장춘식의 조선족문학(http://blog.naver.com/zhangcz?Redirect=Log&logNo=140019933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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