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조선 인민보』

한자 東北 朝鮮 人民報
중문 东北朝鲜人民报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신문
관련인물 이욱성, 김동구, 백남구
창간 시기/일시 1949년 4월 1일
폐간|종간 시기/일시 1954년 12월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에서 1949년부터 1954년까지 발간되었던 중국 공산당 연변 위원회 기관보.

창간 경위

『동북 조선 인민보』는 1947년 11월 창간한 『단결 일보』에서 비롯되었다. 『단결 일보』는 1948년 5월 정간되었다. 신문사는 1948년 9월 단동(丹東)으로 옮겨 단동 조선 중학교에 자리를 잡고 단결 서점을 운영하였다. 그 뒤 심양(瀋陽)이 해방되자 1948년 11월 단동을 떠나 심양으로 옮겼고, 1949년 1월 다시 연변으로 옮겼다.

전 동북이 공산화됨에 따라 민족 신문 사업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규모가 큰 신문 발간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1949년 3월 연길(延吉)의 『연변 일보』, 하얼빈[哈尔滨]의 『민주 일보』, 심양의 『단결 일보』를 합쳐 1949년 4월 1일 연길에서 『동북 조선 인민보』를 발간하였다.

구성/내용

『동북 조선 인민보』는 ‘문예’, ‘교육 생활’, ‘청년 생활’, ‘국제 일주’, ‘국제 상식’, ‘묻는 곳’(사회복무), ‘학교 생활’, ‘부간’ 등의 고정란과 특집, 부간 등으로 구성되었다. 1949년 7월 7일부터는 ‘신문 통신’이라는 고정란을 두었다. ‘신문 통신’은 신문 편집 사업과 통신 사업의 경험들을 다루었다.

변천과 현황

『동북 조선 인민보』는 1949년 4월 1일 연길에서 창간되었다. 2절지 4면의 한글 일간지였다. 1949년 9월 14일부터 한자를 혼용하였고 1952년 4월 24일부터는 순 한글로 발행되었다.

『동북 조선 인민보』는 1949년 11월 7일부터 ‘노농판’을 발간하고 1951년 3월 1일에는 ‘통신 사업’이라는 통신 간행물을 발간하였다. 1951년 3월 15일 연길에서 ‘동북 조선족 통신원 제1차 대표 회의’를 개최하였고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설립되면서 『동북 조선 인민보』는 민족 보도에 역점을 두었다.

『동북 조선 인민보』는 연변주 정부의 기관지인 동시에 전 동북의 조선족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으로서, 남북만(南北滿)에 각각 주재 기자를 두고 자체의 취재망도 갖추었다. 그러나 동북국이 취소됨에 따라 1955년 1월 1일부터 『동북 조선 인민보』는 다시 『연변 일보』로 제호를 바꾸었다. 1954년 12월 출판 정지 되었으며 총 1,583기 출판하였다.

의의와 평가

『동북 조선 인민보』는 중국 공산당 연변 위원회 기관지였을 뿐만 아니라 전 동북의 조선족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으로 당시 조선족 사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신문이었다.

참고문헌
  • 연변조선족자치주 지방지 편찬 위원회, 편 『연변조선족자치주지』(중화서방, 1996)
  • 김산덕, 『중국 조선족 문화 연구』(연변대학출판사, 2002)
  • 김철수·강룡범·김철환, 『중국 조선족 력사 상식』(연변인민출판사, 1998)
  • 최상철, 『중국 조선족 언론사』(경남 대학교 출판부,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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