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臨江 統一 党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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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 临江统一党部 |
분야 | 역사/근현대|종교/신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8년 12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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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조선 연변조선족자치구 용정시 |
중국연변조선족자치주에 있었던 천도교 청년당의 용정 당부·화룡 당부·연길 당부·의란구 당부·삼도구 당부의 연대 통합 당부.
천도교 청년당은 천도교의 청년 단체로 1919년 9월 2일 조직된 천도교 청년 교리 강연부, 1920년 4월 25일 명칭을 변경한 천도교 청년회의 후신으로 1923년 9월 2일 조직되었다. 1926년 1월 천도교가 신구 양파로 분리됨에 따라 천도교 청년당도 4월 3일 천도교 청년당[신파]과 천도교 청년 동맹[구파]로 나뉘었다가 1930년 12월 23일 천도교 신구 양파가 합동하자 1931년 2월 16일 신파측 천도교 청년당과 구파측 천도교 청년 동맹이 합동하여 천도교 청우당으로 통합되었다. 1932년 1월 천도교가 다시 신구 양파로 분화됨에 따라 천도교 청우당도 신파측 천도교 청우당과 구파측 천도교 청우당으로 각각 분화되었다가 이해 12월 23일 신파측 천도교 청우당은 천도교 청년당으로, 구파측 천도교 청우당은 천도교 청년 동맹으로 복원되었다. 이후 신파측 청년 단체로 활동한 천도교 청년당은 1939년 4월 3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체당하였다. 해방 후인 1945년 9월 14일 천도교 청우당으로 재창당되었으며 1952년 12월 24일 천도교 청년회로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중국만주 일대에 있던 천도교 청년당 지방 당부는 1939년 4월 3일 해체된 이후 소멸되었다. 천도교 청년당은 1920년대 『개벽』·『조선 농민』·『어린이』 등 잡지 간행의 출판, 어린이날 제정 등 소년 운동, 조선 농민사 설립과 농민의 이익 옹호를 위한 농민 운동, 청년 운동, 여성 운동, 학생 운동, 노동 운동, 상민 운동 등 부문 운동을 통한 문화 운동, 그리고 오심당 등 비밀 결사를 조직하는 등 민족 운동을 주도하였다.
임강 통일 당부 조직 당시 대표는 이인구, 부대표는 지동호·이창규·김희성이 선임되었다. 1929년 4월 대회에서 대표에 전성우, 상무에 한창연과 이승철, 1930년 8월 25일 당원 대회에서 대표 이인구, 부대표 이창규, 1931년 3월 5일 당원 대회에서는 대표에 이창규, 부대표 김희성, 1932년 4월 4월 당원대회에서 대표에 지동호, 부대표에 김희성이 각각 선임되었으며, 언제 해체되었는지는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