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大倧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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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 大倧教 |
분야 | 역사/근현대|종교/신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1910년대부터 주로 만주 지역에서 단군신앙의 확산과 독립운동에 주력한 종교.
1909년 나철(羅哲) 등이 단군교(이후 대종교로 개명)를 중광하였고 1911년 전후 단군교의 이정완(李貞完)이 화룡현 학성촌 등 지역에서 전도했다. 1914년 나철이 총본사를 조선으로부터 화룡현 명신사 삼도구 청파호[현 화룡진 하동]에 옮겨와 반일 활동에 종사했다. 당시 신도는 1만 5천 명이다. 1915년 일제는 대종교를 불법 단체로 공포하고 탄압했다.
1916년 9월 나철이 조선황해도구월산에서 자결하고 김교헌(金敎憲)이 제2세 교주가 되었다. 1918년 4월 김교헌은 서일 등과 함께 「무오 독립 선언서」를 발표했고 대종교 교도를 중심으로 중광단을 조직하여 반일 운동을 벌였다. 그해 8월 중광단을 토대로 정의단을 조직했으며 12월에는 북로 군정서로 고쳤다. 서일이 총재를 맡고 김좌진이 총사령을 맡았다.
1923년 김교헌이 피로에 지쳐 세상을 떴고 윤세복이 제3세 교주에 취임했다. 1925년 일제와 군벌정부의 탄압으로 금교가 되었다. 1942년 11월 영안에서 신안진으로 가는 대종교 교주 윤세복과 이동주가 일제에 체포된 뒤 광범한 지역에서 대종교의 20명 주요 인사가 체포되었다. 그중 10명은 목단강 감옥에서 학살당했고 10명은 8·15 광복과 함께 출옥되었다. 이것이 ‘대종교임오 교변’이다. 그 후 대종교는 지하로 들어갔다.
대종교가 중광되면서 1946년 1월 총본사가 조선경성으로 옮겨가기까지 32년간 동북 지구에서 활동하여 대종교의 주요한 활동지는 중국 동북 지구였다. 대종교는 총본사 산하에 동·서·남·북 네 개 도본사를 설치하였는데 독립운동의 발전과 함께 교세의 확장도 놀랄 만큼 신속했고 교도가 무려 30만 명에 달하여 단군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대종교의 반일 활동과 대중들의 반일 정서가 일치성을 나타냈다. 대종교는 단군 숭배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반일 민족 정신을 고취하였다. 대종교 신도들은 무장 독립 단체를 건립하고 청산리 전역에서 적 1,000여 명을 소탕하는 전과를 올리는 등 반일 무장 투쟁에 직접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