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 교회[천주교]

한자 龍井 敎會[天主敎]
중문 龙井教会[天主教]
분야 역사/근현대|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천주교회
설립 시기/일시 1909년
정의

1909년 연길 교구의 산하로 동만주의 연길현 용정에 설립된 천주교회.

설립 목적

용정 교회는 천주교세를 확장하고 교인들의 생활 안정과 정착을 위해 설립된 교회로서, 용정 일대 조선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도 수행하였다.

변천

처음 동만주 일대 천주교 신도는 연길과 화룡에 거주하였다. 이후 교세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1909년에 연길현 용정과 화룡현 삼원봉 영암촌에 본당이 설립되었다. 용정 교회도 이 무렵 설립되었다.

천주교의 교세가 확장되는 가운데 신도들은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위하여 도처에 신도 마을을 건설하였다. 그 결과 동만주 일대에는 학서골·싸리밭굽·삼원봉·부채골 등 천주교 공소가 설립된 곳에 신도 마을이 형성되었다.

1928년 동만주 일대의 천주교 신도는 1만 2057명으로 증가하였지만, 연변 각지의 농촌에 설립한 천주교 공소·야학 강습소·사립 학교는 한 때 위기를 맞았다. 장작림의 동북 군벌이 실시한 귀화와 압력으로 많은 조선인이 국내로 들어오거나 만주의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신도의 숫자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동만주 일대 천주교 교세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새로운 선교 전략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1929년 연길 교구가 정식으로 성립되고 2월 5일에는 백화동 신부가 교구장으로 취임하고 중앙 관리소를 국자가에 설치하였다. 백화동 신부의 수하에는 독일인 신부 20명, 조선인 신부 2명 외에 연길·훈춘·화룡·두도구·팔도구 등 교회에 16명의 독일인 수사(修士)가 있었다. 연길 교구 산하의 화룡·용정·연길·훈춘과 명월구·목단강·신참, 돈화·합마당 등지에는 14개의 교회에 1만 5,000명의 신도, 사립 학교 41개소에 학생 1,500명이 있었다. 연길 교구는 선교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입장에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교육 선교의 방침을 견지하였다. 그리하여 연길 교구에는 천주 교회가 있는 곳에는 꼭 학교가 병설되어 있게 되었다.

1909년에 설립된 용정 교회연변에서 역사가 제일 오랜 교회의 하나로서 1932년에 신축한 성당에 입주하였다. 선후 네오남신부[1909년]·갈니스도임신부[1921년]·암보로시오한신부[1925년]·곤라도박신부[1931년]·발두인배신부[1932년] 등이 본당 주임 신부를 역임하였다. 1936년에 용정 교회에는 8개 공소에 신도가 1,743명이 있었다. 교회에는 수녀원 분원이 있었는데 수녀 6명이 선교 사무를 협조하고 있었다. 부설 해성 학교에는 교원 10명과 학생 582명이 있었고 야학교에는 교원 3명과 학생 46명이 있었다. 해성 학교는 13회에 걸쳐 졸업생 250명을 배출하였다. 용정 교회에는 전간도 달시시오 소녀회와 카톨릭 진행회의 본부가 병설되어 있었으며, 기타 교회 조직 7개를 포함하여 회원 507명이 있었다.

의의와 평가

연길 교구용정 교회연변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의 하나로, 선교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입장에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교육 선교의 방침을 견지하였다. 그리하여 연길 교구용정 교회에도 항상 학교가 병설되었다. 용정 일대 이주 조선인의 안정과 정착에 기여함으로써 조선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 정용두, 류성민『종교학 10강』(성광문화사, 1995년)
  • 최석우, 『한국천주교회의 역사』(한국교회사연구소, 1982년)
  • 김광회, 『연변천주교의 연혁과 오늘의 상황』(『연변문사자료』8, 1997년)
  • 『연길교구 각교회 연혁과 현세』(『카톨릭청년』41, 1936년)
  •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중국조선민족문화사대계6, 종교사』민족출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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