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피거우 교회

한자 쟈피거우 敎會
중문 夹皮沟教会
분야 역사/근현대|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4년
정의

1934년 동만주의 왕청현 춘명촌 쟈피거우에 건립된 감리교회.

설립 목적

쟈피거우 교회는 길림 조선족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종합하여 기독교적 믿음을 기초로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 민족 단결을 이룩하여 항일 민족 운동을 진행하려는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변천

1920년 5월에 소집된 미국 남감리회 조선 년회는 동북과 시베리아에 대한 선교를 정식으로 결의하고 크림(W.G.Cram)을 지방 감리사로 임명하고 양주삼과 정재덕 목사를 관할 목사로 파견하였다. 크림, 양주삼, 정재덕 일행은 1920년 10월 개성에서 출발하여 길림·하얼빈·블라디보스토크·니꼴스크 등지를 순회하면서 각지에 거주하고 있던 감리교인들의 집회를 공식화하여 1년 동안 30개소의 교회를 설립하였다.

1920년 감리 교회 조선 청년회 만주 지방회를 설립하고 1921년에는 시베리아, 만주 선교처를 조직하였고, 1922년에는 길림, 북간도 등 지방회를 설립하였다. 이때 동북과 시베리아에는 남감리회 5개소 및 지방회와 구역회가 17개소가 설립되었다.

1929년 1월, 봉천에서 미국 감리 교회 대표 5명과 장로 교회 대표 8명이 협의회를 열고 동북을 감리·장로 두 파의 두 개 선교구역으로 나누었다. 이와 동시에 조선에서도 1930년 12월 2일에 두 교회가 연합하여 자치단체인 기독교 조선 감리 교회를 결성하고 양주삼 목사를 초대 총리사(總理師)로 선임하였다. 그 후 만주에 있는 미국 감리 교회 만주 지방회와 남감리 교회 연변 지방회는 통합하여 1931년부터 매년 용정에서 기독교 조선 감리 교회 만주 선교 년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쟈피거우 교회는 1934년 5월에 왕청현 춘명촌 쟈피거우에 설립되었으며 신도는 84명이 있었다. 1930년대 동만 지역에 건립된 감리 교회는 쟈피거우 교회를 포함하여 팔과수 교회·이수구 교회·서대파 교회·목단촌 교회·소백초구 교회·석건평 교회·진화툰 교회·도문 교회·경신 교회 등 12개소였으며, 신도는 모두 789명이었다. 서대파 교회는 1939년 만주 선교 년회가 북만주와 동만주의 두 개의 지방 분회로 분리되었을 때 동만주 분회의 9개 구역 가운데 하나에 소속되었다.

1930년대 후반 들어서도 감리교 계통의 교회는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9년 7월 1일까지 만주 지역에 있던 감리교 교회 수는 동만주에 27개소, 북만주에 22개소가 있었다. 교인 수는 동만주에 3,201명 북만주에 1,381명으로 총 4,582명이 있었다.

의의와 평가

쟈피거우 교회는 신학 연구와 함께 빈민과 병자, 감옥 죄수들의 전도에 힘썼다. 특히 손정도 목사는 기독교를 통해 조선족 사회의 단결과 협조를 강조하여 동만주 조선인 사회의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참고문헌
  • 정용두, 류성민『종교학 10강』(성광문화사, 1995)
  • 박주신, 『간도 한인의 민족 교육 운동사』(아세아 문화사, 2000)
  • 한생철, 『영국더기-룡정기독교장로파교회시말』(『연변문사자료』8, 1997)
  •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개정판,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
  •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중국조선민족문화사대계6, 종교사』민족출판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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