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루

한자 牟頭婁
중문 牟头娄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인물|관료
성별 남성
대표관직 대사자
정의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 때 북부여의 수사(守事)로 관등이 대사자(大使者)였던 인물.

가계

모두루의 묘지(墓誌)에 따르면 선조는 북부여 출신으로 동명성왕과 함께 북부여로부터 내려 왔으며, 미천왕 때인 4세기 초 대형(大兄)인 염모(冉牟)가 크게 활약하여 일족을 중흥시켰다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은 묘지명이 마멸되어 알 수 없지만 관등은 대형으로 나타난다.

활동 사항

모두루는 1935년 10월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의 동쪽, 즉 북한의 자강도 만포의 맞은편 하해방촌에서 묘지명이 발견되면서 알려진 인물이다. 비문은 많은 부분이 마멸되었고 350여 자만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살펴보면, 모두루의 선조는 북부여 출신으로 동명왕과 함께 남하하였으며, 4세기 초에 대형(大兄)인 염모(冉牟)의 활동으로 일족이 중흥하게 되었다.

비문이 마멸되어 모두루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광개토왕 때에 이르러 모두루는 할아버지의 음덕으로 북부여의 수사(守事)가 되었으며, 임지에서 광개토대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의 행적은 비석의 마모가 심해 알 수 없다.

참고문헌
  • 武田幸男,「牟頭婁一族と高句麗王權」(『朝鮮學報』99·100합집, 1981)
  • 田中俊明,「高句麗の金石文」(『朝鮮史硏究會論文集』18, 1981)
  • 池內宏,『通溝』上, (圖書刊行會, 1979)
  • 허흥식 편, 『한국 금석 전문』(아세아 문화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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