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牟頭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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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 牟头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성격 | 인물|관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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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성 |
대표관직 | 대사자 |
모두루는 1935년 10월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의 동쪽, 즉 북한의 자강도 만포의 맞은편 하해방촌에서 묘지명이 발견되면서 알려진 인물이다. 비문은 많은 부분이 마멸되었고 350여 자만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살펴보면, 모두루의 선조는 북부여 출신으로 동명왕과 함께 남하하였으며, 4세기 초에 대형(大兄)인 염모(冉牟)의 활동으로 일족이 중흥하게 되었다.
비문이 마멸되어 모두루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광개토왕 때에 이르러 모두루는 할아버지의 음덕으로 북부여의 수사(守事)가 되었으며, 임지에서 광개토대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의 행적은 비석의 마모가 심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