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발소

한자 鄒㪍素
중문 鄒㪍素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관료
성별
대표관직 남부사자|비류부장
출생 시기/일시 미상
활동 시기/일시 32년
활동 시기/일시 32년
몰년 시기/일시 미상
정의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 재위시 비류부장을 역임했던 관료.

활동 사항

추발소고구려국내성(國內城)에 도읍을 두고 있던 대무신왕(大武神王)[재위 18~44] 재위시 비류부장(沸流部長)을 지내고, 왕으로부터 대실씨(大室氏)의 성(姓)을 하사받은 인물이다.

고구려 제3대 대무신왕 때에 구도(仇都)·일구(逸苟)·분구(焚求)라는 세 사람의 비류부장이 있었다. 이들은 욕심이 많고 야비하여, 남의 처첩·우마·재화를 빼앗고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며, 주지 않는 자가 있으면 매질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분하고 원망스럽게 여겼다. 이에 왕은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시조 동명왕의 옛 신하였던 까닭에 차마 극형에 처하지 못하고 내쫓아 서인(庶人)으로 삼은 뒤, 그 후임으로 남부 사자(南部使者) 추발소를 비류부장으로 삼았다.

추발소는 부임한 후, 큰 집을 짓고 거처하면서 구도 등 죄인을 당(堂)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구도 등은 왕법을 범한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추발소에게 용서를 빌었다. 추발소는 스스로 과오를 뉘우치고 고치려는 점을 높이 사 그들을 용서하고 친구가 되었으며, 구도 등은 감격하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대무신왕은 이러한 상황을 전해 듣고, 추발소가 위엄을 쓰지 않고 지혜로 악을 징계한 점을 칭찬하며 성(姓)을 내려주어 대실씨(大室氏)라고 하였다.

추발소와 관련된 위와 같은 사실에서 한국 고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들이 보인다. 먼저 공동체에 기반한 초기 고구려 사회의 모습이 비류부, 남부 등에서 보이고, 부의 우두머리인 장(長)과 부에 소속된 사자(使者)라는 관명(官名)도 나타난다. 비류부는 주몽이 처음 복속시킨 비류국이 고구려 5부의 하나로 편입된 것인데, 공동체적 질서가 여전히 강한 부를 기반으로 초기의 고구려 사회가 유지되고 있었다. 남부는 관노부(灌奴部)이다. 남부는 방위명으로, 고구려에서 방위명은 고국천왕 시기부터 점차 많아져 고유한 명칭과 병행되다가 서천왕 시기부터는 방위명으로만 불리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방위명의 등장이 국가 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행정적 편제 단위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여기의 남부라는 표현은 후대적 사실이 투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사자(使者)라는 관명은 부여에서도 나타나는 초기 관명으로, 추발소가 남부 출신의 사자인지, 남부에 소속된 사자인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한국 역사에서 왕의 성(姓)이 아닌 다른 성씨가 사성(賜姓)의 형태로 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고구려 건국 신화에서 주몽은 이미 재사(再思)에게 극씨(克氏)를, 무골(武骨)에게 중실씨(仲室氏)를, 묵거(黙居)에게 소실씨(少室氏)를 하사한 바 있었다. 주몽이 부여에서 남하하면서 만난 세 사람에게 성씨를 하사한 것인데, 실씨(室氏)에 대, 중, 소가 붙으면서 중복되는 것으로 보아 대세력 아래의 수장층에게 수여한 성씨일 수도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김광수, 「고구려건국기의 성씨사여」(『김철준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1983)
  • 노태돈, 『고구려사 연구』(사계절,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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