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한자 溫達
중문 溫达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시기/일시 6세기 중엽
혼인 시기/일시 559년~577년 사이
활동 시기/일시 577년~ 590년
몰년 시기/일시 590년
정의

설화상으로 전하는 고구려 25대 평원왕의 부마이자 고구려의 장군.

활동 사항

온달의 출생을 알 수 없지만 어린 시절에는 집안이 몹시 가난해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거리를 다니며 걸식을 하였으며, 사람들로부터 ‘바보 온달’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당시 평원왕은 울기를 잘하는 어린 공주에게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희롱하였는데, 공주는 16세가 되자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온달과의 혼인을 고집하다 궁에서 쫓겨나, 온달과 결혼하였다. 평강 공주와 결혼한 온달은 공주의 도움으로 집안을 일으키고 무예를 연마했다.

고구려에는 매년 3월 3일 국왕이 신하들과 5부의 병사 등을 이끌고 낙랑(樂浪)의 언덕에서 수렵을 하고 여기서 얻은 노획물로 천신(天神)과 산천신(山川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큰 행사가 있었다. 이 때 온달은 수렵행사에 참여하여 뛰어난 활약을 보여 평원왕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북주(北周)군이 요동을 침입하였을 때 온달이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우니, 마침내 대형(大兄)이란 벼슬과 함께 정식으로 부마로 인정을 받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온달전」의 기록에서 구체적인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북주무제의 침입 기사인데, 대략 577년으로 비정할 수 있으므로, 온달이 정식으로 부마가 되고 벼슬길에 오른 것은 이 무렵으로 볼 수 있다.

이후 평원왕의 부마로서 온달의 위엄과 권세는 커져 갔다. 평원왕의 뒤를 이어 영양왕이 즉위하자 온달은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자원하여 출정하였는데, 아단성(阿旦城) 전투에서 적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온달의 출정은 영양왕 즉위 1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의 사망 시기는 590년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이기백,「온달전의 검토-고구려 귀족사회의 신분질서에 대한 별견-」(『백산학보』3, 백산학회, 1967)
  • 임기환,「온달.서동설화와 6세기 사회」(『역사비평』22, 1993)
  • 이기담,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푸른역사, 2004)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aks)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http://www.koreanhistor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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