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왕

한자 準王
중문 准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길림성  요령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상세정보
성격 국왕
성별 남성
출생 시기/일시 BC 3세기
활동 시기/일시 BC 3~2세기
몰년 시기/일시 BC 2세기
정의

기자 조선의 마지막 왕.

개설

역사적으로 기자 조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비등하다. 하지만 준왕위만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남쪽으로 내려와 진국(辰國)을 중심으로 세력 기반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실체가 분명한 고조선의 국왕이었다.

가계

성은 기씨(箕氏)로 기자(箕子)의 40여 대 손(孫) 부왕(否王)의 아들로 전해진다.

활동 사항

B.C. 3세기 말 아버지 부왕(否王)을 이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때 중국에서 내란이 일어나 이를 피해 연(燕)·제(齊)·조(趙)나라 등의 사람들이 고조선으로 도망해 오자 준왕은 이들을 고조선의 서쪽 지역에 살게 하였다. B.C. 206년 한나라 고조가 중국을 통일한 후 노관(盧綰)에게 연나라를 다스리게 했으나, 노관이 반란을 일으켜 흉노(匈奴)로 달아나 연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이때 연나라 왕의 부장(副將)이었던 위만이 B.C. 194~180년경 연나라의 망명자 1천여 명을 이끌고 패수(浿水)를 건너와 고조선[기자 조선]의 준왕(準王)에게 거두어 줄 것을 요청했다.

준왕위만을 신임하여 박사(博士)로 임명하였고, 고조선의 100리 땅을 떼어 서쪽 변방을 지키게 하였다. 하지만 위만은 계속 고조선으로 들어오는 유망민(流亡民)들을 포섭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웠고,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해오자 준왕에게 사람을 보내 거짓으로 들어가 왕을 호위하겠다고 하며 군사를 몰아 도읍인 왕검성(王儉城)을 공격하였다. 이때는 『사기(史記)』 「조선전(朝鮮傳)」에서 효혜고후기(孝惠高后時)라고 밝히고 있어 B.C. 194∼180년경으로 보인다.

준왕위만에게 쫓겨 측근 신하만을 거느리고 뱃길로 남하하여 한지(韓地)에 와서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칭하였다. 준왕은 진국(辰國)을 중심으로 세력 기반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진국은 마한의 진왕(辰王)에 의해 소멸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를 중심으로 하는 고조선의 문화는 마한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준왕이 남하한 지역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제왕운기』·『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는 준왕의 도읍지로 전라북도 익산을 비정하였고, 그러한 인식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이와 달리 경기도 광주 경안(京安)이나 충청남도 직산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 이병도, 「삼한문제(三韓問題)의 신고찰(新考察)」(『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 천관우, 「삼한의 국가형성」(『한국학보』3, 일지사, 1976)
  • 김정배, 「준왕 및 진국과 삼한정통론의 제문제-益山의 靑銅器文化와 관련하여-」(『한국사연구』13, 한국사연구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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