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한자 檀君
중문 檀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길림성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상세정보
성격 국왕(건국시조)
성별 남성
출생 시기/일시 미상
활동 시기/일시 BC 2333년
몰년 시기/일시 미상
추모 시기/일시 10월 3일
묘소|단소 평안남도 강동군
사당|배향지 평안남도 평양
사당|배향지 황해도 문화현
사당|배향지 평안북도 묘향산
사당|배향지 인천시 강화군
정의

우리 역사의 최초 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한 시조.

개설

단군(壇君)은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에서 제사와 정치의 기능을 아우른 우두머리로 이해되고 있다. 반면 단군(檀君)은 세계 신화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우주목(宇宙木)·세계수(世界樹)의 관념을 반영한 수목 숭배 사상과 관련하여 이해되고 있다. 단군(檀君)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제사장 또는 종교적인 무군(巫君)을 의미하는 단군(壇君)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때 단군(壇君)은 몽고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에서 하늘을 뜻하는 ‘텡그리(Tengri)’와 관련하여 해석되기도 한다.

가계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제석(帝釋) 환인(桓因)의 손자이자 환웅(桓雄)의 아들로, 모계는 곰[熊]이 변한 웅녀(熊女)로 기록되어 있다. 또 『제왕운기(帝王韻紀)』에는 나무신(神)인 단수신(檀樹神)의 아들이고, 모계는 상제(上帝) 환인의 아들인 단웅(檀雄)의 손녀로 기록되어 있다. 두 자료가 인용하고 있는 『단군기(壇君記)』와 『단군본기(檀君本紀)』에는 부루(扶婁)와 주몽(朱蒙)을 그 아들로 서술하고 있다.

활동 사항

단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13세기 후반에 저술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의해 정립되었다. 이들 자료에서 단군은 고조선[왕검 조선] 또는 전조선(前朝鮮)의 건국 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단군에 대한 기록을 『위서(魏書)』·『고기(古記)』·『본기(本紀)』 등의 자료를 인용하여 서술하고 있어 『삼국유사』·『제왕운기』의 편찬 이전부터 그 전승이 전해져 오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곰과 호랑이 등의 수조(獸祖) 신앙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삼국유사』의 전승이 고형(古型)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는 『위서』를 인용하여 중국요임금과 같은 때에 단군왕검(壇君王倹)이 아사달(阿斯逹)에 도읍하여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 『고기』를 인용하면서 요임금 50년에 평양에 도읍하여 조선을 열었으며, 백악산 아사달(白岳山阿斯逹)로 천도하였고, 기자가 조선으로 오자 다시 장당경(藏唐亰)으로 옮겼으며, 나라를 다스리기를 1500년이었고 나이는 1908세였다고 기록하였다. 또 『제왕운기』에서는 단군이 1028년 동안, 『제왕운기』가 인용하고 있는 『본기』에서는 1038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었다고 기록한다. 이 같은 단군의 고조선 통치기간은 권근(權近)의 「응제시(應製詩)」에 나타나듯 이후에는 재위기간이 아닌 고조선[단군 조선]의 건국부터 멸망까지의 기간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군이 고조선의 왕명(王名)이라는 이해로 확장되었다.

추모

한편 단군이 도읍으로 정한 평양에 대해 『삼국사기』에서는 선인왕검(仙人王儉)의 유택(遺宅)이 있는 곳으로 기록하여 단군과의 관련성을 언급하고 있고, 고려 후기 조연수(趙延壽)의 묘지명(墓誌銘)에서도 역시 평양과 1천여 년이 넘는 선인왕검의 연고를 서술하고 있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편찬 이전부터 단군과 그 도읍지로 알려진 평양은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려사』에서 여러 차례 보이는 평양 지방의 신(神)인 평양신(平壤神)·서경신(西京神)·평양군(平壤君), 그리고 그 신을 모신 사당인 평양사(平壤祠)·서경신당(西京神堂)·평양군사(平壤君祠) 등도 역시 단군을 모신 곳으로 보인다.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왕검 조선] 또는 전조선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 단군 조선으로 확정되어 기자 조선·위만 조선과 함께 우리나라의 역사 인식에서 삼조선(三朝鮮) 체계로 확립되었다. 아울러 이후 역사 인식 체계의 확대와 함께 그 이해의 폭이 확장되어 도읍지로 전해지는 평양 인근 강동에 그 무덤인 단군묘(檀君墓)[한말에 단군릉으로 숭봉]가 있다는 전설도 전승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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