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한자 路人
중문 路人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길림성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상세정보
성격 관료
성별
활동 시기/일시 기원전 109년
기원전 108년 4월
정의

위만 조선 시대의 관료.

개설

노인은 고조선 출신으로 위만 조선 때 조선상(朝鮮相)을 역임하였다. 기원전 109년 한나라 무제(武帝)가 조선을 침략하였을 때 주화론을 주장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漢)에 투항하였다.

가계

노인에 대해서 『사기(史記)』 조선열전 주에서는 색은(索隱)에 “노인은 어양현인(漁陽縣人)”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근거는 불분명하지만, 한나라에는 노성(路姓)이 적지 않기 때문에 색은의 설은 일단 신빙성이 있다. 노씨 성을 가진 인물로는 『사기』 위장군 표기 열전에 장군 노박덕(路博德)이 나온다. 그는 평주 사람으로 표기 장군이 죽자 위위 복파장군이 되어 남월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 ‘노인’의 경우, ‘노’를 성으로 ‘인’을 이름으로 본다면 인은 정식 이름이라기보다는 아마 ‘노씨 성을 가진 사람’ 이라는 의미 정도로, 한나라 계통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성만을 가지고는 구체적인 소속을 확정하기는 힘들다. 아들 최(最)가 있다.

활동 사항

노인은 고조선 출신으로 위만 조선의 중앙 정부에 참여하여 조선상(朝鮮相)의 관직을 지냈다. 기원전 109년 한나라 무제(武帝)의 군대가 위만 조선을 침략하였을 때 상 한음(相韓陰), 이계상 삼(尼谿相參), 장군 왕겹(王唊) 등과 함께 주화론(主和論)을 주장하여, 우거왕(右渠王)에게 항복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이 건의가 거부되자 기원전 108년 4월 한음·왕겹과 함께 왕검성(王儉城)을 탈출하여 적군에 투항하였는데, 중도에 사망하였다.

한편 노인의 아들 최(最)는 이보다 앞서 한나라에 투항하였는데, 우거왕이 살해된 뒤 최후까지 항거하는 고조선의 대신 성기(成己)를 암살하는 데 공을 세워 뒤에 한나라에 의하여 온양후(溫陽侯)에 봉해졌다.

참고문헌
  • 『사기(史記)』
  • 송호정,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푸른역사, 2003)
  • 조법종, 『고조선 고구려사 연구』(신서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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