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

한자 解明
중문 解明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왕자
성별
활동 시기/일시 3년
활동 시기/일시 4년
활동 시기/일시 8년
몰년 시기/일시 9년
사당|배향지 미상
정의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의 태자.

가계

할아버지는 고주몽이고, 아버지는 유리왕, 형은 도절(都切)이다.

활동 사항

해명[B.C. 12∼A.D. 9]은 태자였던 도절이 물에 빠져 죽자, 4년(유리왕 23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유리왕은 국가 발전에 적합한 터를 발견하고, 도망간 돼지 사건을 통해서 명분도 확보한 후,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3년(유리왕 21)에 국내성으로 천도를 강행했다. 그런데 당시 21살인 태자 해명은 이에 반대했고, 5년이 지났도록 여전히 옛 수도인 홀본(忽本)에 남아 있었다.

해명은 매우 걸출한 인물이어서 힘이 세고 무용을 뽐내길 좋아하였으며, 자의식이 강했다. 8년 이웃의 황룡국(黃龍國) 왕이 이를 듣고 해명의 힘을 시험해 보려고 강한 활을 보내자, 고구려를 가볍게 보지 못하도록 활을 쉽게 꺾어 황룡국 왕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리왕은 오히려 화를 냈다. 자칫 국제 관계에 분쟁을 일으켜 국가의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룡국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해명을 죽여줄 것을 청했으나 황룡국 왕은 오히려 해명을 흠모하게 되었다. 유리왕해명에게 “내가 천도한 것은 백성을 편안케 하여 나라를 굳게 하려 함인데, 너는 따라오지 않고 힘센 것을 믿고 이웃나라와 결탁하여 원한을 맺었으니 자식된 도리가 이럴 수가 있겠는가”라고 탓하였다. 마침내 9년 유리왕해명에게 칼을 보냈다. 해명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원 동원(礪原東原)으로 가서 달리는 말에서 몸을 날려 미리 땅에 꽂아둔 창에 찔려 죽었다. 조정에서는 태자의 예로 장례하고 이곳에 묘(廟)를 세웠으며 창원(槍原)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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