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扶芬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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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 扶芬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
성격 | 신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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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활동 시기/일시 | 서기전 32년(동명왕 6) |
활동 시기/일시 | 서기전 9년(유리왕 11) 4월 |
출신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구려 건국 초기의 중요한 세력인 부씨(扶氏) 출신으로 보인다.
부분노는 고구려가 의식(儀式)을 갖추는 데 크게 공헌했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 비류국(沸流國)과 경쟁을 벌일 때 의식을 갖추지 못했다. 경쟁하는 나라인 비류국(備流國)의 사신이 고구려에 다녀갈 때마다 예를 갖추어 송영(送迎)할 수 없었다. 그러자 부분노는 비류국의 고각(鼓角)을 훔쳐 와 의식(儀式)을 갖추게 하였다.
B.C. 32년(동명왕 6)에는 중신인 오이(烏伊)와 함께 태백산(太伯山) 동남쪽의 소국인 행인국(荇人國)을 정벌하여 성읍으로 삼게 하였다. B.C. 9년(유리왕 11) 4월에는 침략을 일삼던 선비(鮮卑)를 계략으로 크게 물리치고 속국으로 삼게 하였다. 왕이 그 공을 인정해 정복한 땅을 식읍(食邑)으로 하사했지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그러자 나라에서는 부분노에게 황금 30근과 양마(良馬) 10필을 상으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