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맥족

한자 濊貊族
중문 濊貊族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선사/선사|고대/고대
정의

고대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부에 살던 민족으로, 현대 한민족의 근간이 되는 종족 중의 하나.

개설

예맥은 맥(貊·貉) 또는 예[濊·穢·薉]로도 불렸는데, 서쪽으로는 동호(東胡), 동쪽으로는 숙신(肅愼)과 접해 있었다. 예맥은 기원전 2~3세기 경부터 송화강, 압록강 유역과 동해안 일대[한반도의 평안도·함경도·강원도, 만주의 요령성과 길림성]에 걸친 지역에 정착하여 활동한 종족으로 여겨진다. 부여(扶餘)·고구려·옥저·동예 등 여러 나라들은 모두 예맥에 포괄되며, 여기에 부여의 한 갈래로 한강 유역에 자리잡아 커진 백제 역시 예맥족의 나라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예족은 호랑이에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곽박의 『이아(爾雅)』, 『일본서기』 등을 근거로 ‘맥(貊)’이 곰을 의미했고 예족과 맥족의 관계가 단군신화(檀君神話)에 반영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로부터 단군신화에는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곰을 토템(totem)으로 하는 맥족(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예족(濊族)을 평정하고 복속시킨 것이 신화(神話)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예맥에 대한 학계의 견해

예·맥·예맥의 상호 관계와 그 종족적 계통에 관해서는 일찍부터 논란이 있어 왔다. 예맥에 대해서는 예와 맥으로 나누어 보거나, 예맥을 하나의 범칭(汎稱)으로 보는 견해, 예맥은 맥의 일종이며, 예는 예맥의 약칭이라는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현재 학계에서는 예맥이 예와 맥으로 구분되지만, 서로 다른 계통이 아닌 하나의 계통이더라도 다른 갈래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예와 맥은 사회적·정치적으로 서로 구분이 되지만 종족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예맥 내부의 여러 집단 중에 우세한 집단이 등장하여 주변 세력을 병합하면서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다. 예맥이 고조선(古朝鮮)을 구성하는 종족 집단을 이루었고, 한반도 중남부에 거주했던 한족(韓族)과 더불어 한민족 형성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예맥과 고구려

고구려의 종족 기원과 관련하여 예·맥·예맥이 많이 주목되었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현재로서는 정설이 없다. 고구려의 종족 기원에 대해서는 예족설, 맥족설, 예맥족설, 예맥족에서의 분화설, 원래는 예족인데 명칭상 맥족이라는 설 등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두 제시되었다. 어느 하나로 단정지을 수는 없고 고구려 종족은 지역에 따라 대수맥(大水貊)·소수맥(小水貊) 등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는 주어진 환경의 열악성과 경제적 기반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팽창 정책을 구사했다. 이 과정에서 예맥계 종족이 주민의 상당수를 차지했던 두만강·대동강·요하·송화강 유역을 차례차례 제압해 나가면서 이들 주민들을 고구려 국가 지배 구조 내로 편입시켰다. 고구려는 동질성을 인정할 수 있는 주민들이 사는 지역을 우선적으로 확보하여 전략거점화하고, 이들을 고구려인으로 동화·통합시키는 정책을 수행해 나갔다.

참고문헌
  • 『사기(史記)』
  • 『삼국사기(三國史記)』
  • 서병국, 『동이족과 부여의 역사』(혜안, 2001)
  • 김정배,「예맥족에 대한 연구」(『백산학보』5, 백산 학회,1968)
  • 송호정, 「고구려의 족원과 예맥」(『고구려 발해 연구』27, 고구려 발해 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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