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형식 열사 희생지 기념비

한자 許亨植 烈士 犧牲地 紀念碑
중문 许享植烈士牺牲地纪念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흑룡강성 수화시 경안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유물
양식 비석
관련인물 허형식
재질 흰색 타일 기단 위에 흰색 대리석
관리자 흑룡강성 경안현(慶安縣) 당국
건립 시기/일시 1998년 10월 20일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909년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42년
현 소재지 흑룡강성 경안현(慶安縣) 대라진(大羅鎭) 청송령(靑松嶺) 입구
정의

흑룡강성(黑龍江省) 경안현(慶安縣) 대라진(大羅鎭) 청송령(靑松嶺) 입구에 세워진 항일투쟁가 허형식(許亨植)의 기념비.

개설

허형식은 1900년대 초 의병장으로 크게 의기를 떨친 왕산(旺山)허위(許蔿) 의병장이 당숙이며, 유명한 항일저항시인 이육사(李陸史)가 조카인 명문가 출신이었다. 경북 선산(현재 구미시)의 임은(林隱) 허씨 명문가의 일원으로 온 가족이 중국 동북(만주)으로 집단 이주하여 살신성인을 위한 항일투쟁의 길에 투신하였다. 그의 일족들은 경학사(耕學社)부민단(扶民團), 신흥학교(新興學校), 서로 군정서(西路軍政署) 등을 통해 1910~1920년대 만주지역 민족운동에 헌신하였다. 그 과정에서 허형식 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여 중국인들과 힘을 합쳐 싸우는 1930년대 사회주의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허형식은 1930년 5월 1일 ‘메이데이’를 기념하여 한인 청년 등 50여 명과 함께 하얼빈일본영사관 습격을 주도하여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다. 이후 그는 1934~1936년 동북반일유격대 제1대대장 및 동북 인민 혁명군 제3군 제2단장, 제3사 정치부 주임 등을 맡아 크게 용맹을 떨쳤다. 또한 동북 인민 혁명군이 1936년에 동북항일연합군으로 개편된 뒤 하얼빈 부근의 광대한 동북평원 일대를 근거지로 하여 동북 항일 연군(東北抗日聯軍) 제3군이 성립하였을 때 제9군 정치부 주임을 맡았다. 이후 제1사 사장(1938년 6월), 제3로군 총 참모장 겸 제3군장(1939년 4월)의 중책을 맡아 북만주의 송눈평원(松嫩平原)과 동북의 구릉지대에서 중국인과 한인 연합의 동북항일연군을 영도하며 큰 활약을 펼쳤다. 또한 1941년 초부터 1942년 8월 초까지 일본군과 괴뢰 만주국군의 탄압으로 겨우 생존한 200여 명의 동북 항일 연군 제3로군을 총괄 지휘하며 중국 공산당 만주조직의 독자적 최후 항전을 주도하며 명성을 떨쳤다. 1940년을 전후하여 중국동북의 항일세력은 거의 소멸되고, 일부 인사들이 소련(현재 러시아)의 연해주 지방으로 도피하여 근근이 생존을 도모하고 있을 때였다.

결국 허형식은 1942년 8월 3일 새벽 항일세력을 추적하던 괴뢰 만주국군과 치열한 총격전을 벌인 끝에 전사하고 말았다.

건립 경위

1998년 10월 20일 흑룡강성 경안현 당국에서 당시 전투지 입구인 청송령 들머리에 세웠다.

위치

흑룡강성 경안현 대라진 부근 임도(林道) 옆에 세워져 있다.

형태

흰색 타일 기단 위에 흰색 대리석, 앞면에 ‘항련(抗聯) 제3로군 총참모장 허형식 희생지 경안현 인민 정부 1998년 10월 20일 립(立)’이라고 각자(刻字)되어 있고, 뒷면에는 그의 생애와 공적을 개관하는 비문을 새겨놓았다.

금석문

현재 다음과 같이 비면 뒷면에 새겨져 있다(한국어로 번역함).

허형식, 일찍이 이희산(李熙山)이라고 이름을 바꾸었고, 남자이며 조선족이다. 중국 공산당 당원인데, 중국 공산당 북만성 위원회 위원, 동북항일연군 제9군 정치부 주임, 제3로군 총참모장 등 직책을 역임하였다. 1936년부터 1942년까지 항일연군 부대를 영도하여 경성(慶城), 파언(巴彦) 일대에서 일본침략군과 싸워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942년 8월 2일 저녁, 그는 3명의 항일연군 전사들을 거느리고 항일연군의 활동을 시찰하고 있었는데, 청봉령(靑峰嶺) 일대에서 적 정진대(挺進隊)와 조우하여 쌍방은 격렬한 전투를 치렀다. 불행히 총탄에 맞아 사망하니, 그 때 33세였다. 한 시기 항일연군의 명장으로서 젊은 나이에 일찍 서거하고 말았으나, 청사(靑史)에 공적은 뚜렷하다!”

현황

대체로 관리가 잘 되고있는 편이지만, 중국 조선족이나 한국인 참배객이 거의 없어 체계적 관리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현재 중국 (경안현) 당국에서 허형식의 항일투쟁과 그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추후 한국 지방자치단체(경북 구미시) 등과 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장세윤,「허형식 연구」(『한국독립운동사연구』제7집,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3)
  • 장세윤,「동북항일연군과 허형식」(『한국현대사와 사회주의』, 역사비평사, 2000)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