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 감옥 항일 투쟁 기념비

한자 延吉 監獄 抗日 鬪爭 紀念碑
중문 延吉监狱抗日斗争纪念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하남가 16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2000년 6월
현 소재지 길림성 연길시 하남가 16호연변 예술 극장
정의

1935년 6월 연길 감옥 탈출 관련 투쟁을 기념하는 비석.

개설

연길 감옥은 1924년에 건립되어 ‘길림성 제4 감옥’이라고 불렸는데, 1931년 만주 사변 후 일제가 감옥을 점거하고 명칭을 ‘연길 모범 감옥’으로 바꾸었다. 1931년 초부터 중국 공산당 연길 위원회는 감옥 안에다가 김훈을 서기로 하는 ‘중공 연길 감옥 위원회’를 성립시켰다. 이들은 여러 차례의 파옥과 단식 투쟁을 벌였지만, 변절자들의 밀고로 번번히 실패하였다. 이러한 실패로 김훈·이진·오세국 등 주요 지도자들이 피살되었다.

1935년 6월 7일 김명주는 이태근·이영춘과 17명의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간수들이 단오 명절을 쇠는 기회를 타 족쇄를 끊고 일본 지도관과 감옥장을 처단한 후 감방 문을 부셔서 수백 명의 수감자들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시켰다.

건립 경위

2000년 6월 7일 현지 정부와 당시 혁명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연길 감옥 옛터인 연변 예술 극장 옆에 ‘연길 감옥 항일 투쟁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연길시부르하통하 남쪽의 하남 거리와 장백로의 교차 지점에 있는 연변 예술 극장 옆에 위치하고 있다. 연변 예술 극장의 동쪽에는 연길시 교통 대대와 소방대와 맞닿아 있고, 서쪽은 하남 거리를 건너 연길 민족 호텔과 마주하고 있다. 남쪽은 광화로 북쪽은 장백로와 연결되어 있다. 연변 예술 극장의 주소는 하남 거리 제16호이다.

형태

직사각형의 석조물이다. 정면 상단에는 당시의 투쟁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부조가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연길 감옥 항일 투쟁 기념비’란 비문이 새겨져 있다. 뒷면 상단에는 연길 감옥 항일 투쟁 과정을 알려주는 비문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당시 감옥 안에서 부르던 「연길 감옥가」가 새겨져 있다.

금석문

앞면 : 연길 감옥 항일 투쟁 기념비

뒷면 상단 : 연길 감옥은 1924년에 수건되었으며 ‘길림성 제4 감옥’이라고 불렀다. 1931년 ‘9·18 사변’ 후 일본 침략자들이 감옥을 접수하고 ‘연길 모범 감옥’[간칭 연길 감옥]이라고 고쳤다. 1931년 초 중공 연길현위는 감옥 안에다 김훈을 서기로 하는 중공 연길 감옥 위원회를 세웠다. 당의 령도 밑에 옥중에서는 여러 차례의 파옥과 단식 투쟁을 벌렸지만 변절자의 밀고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으며 김훈, 리진, 오세국 등 주요한 지도자들이 피살되었다. 「연길 감옥가」는 리진이 지은 후 사형장으로 가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후에 이 노래는 감옥 안에서 널리 불렸다.

1935년 6월 7일(음 5월 7일) 김명주는 리태근, 이영춘과 손잡고 또 다시 17명의 결사대를 조직한 후 간수들이 단오 명절을 쇠는 기회를 타 족쇄를 끊어버리고 일본 지도관과 감옥장을 처단한 후 감방 문을 짓부시고 수백 명의 수감자들을 해방하여 파옥에 성공하였다. 이 파옥은 항일 전쟁 시기 동북의 많은 감옥 투쟁 가운데서 유일하게 성공한 투쟁이다. 65성상이 지난 오늘 지난날의 연길 감옥 자리는 연변 인민의 예술전당으로 되었다. 혁명 영웅들의 업적을 추모하고 이를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이 비석을 세운다.

연길 감옥 투쟁에서 영용히 희생된 선렬들이여 영생불멸하리!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 정부 세움

2000년 6월 7일

뒷면 하단 : 「연길 감옥가」

바람 세찬 남북 만주 광막한 들에

붉은기에 폭탄 차고 싸우던 몸이

연길 감옥 갇힌 뒤에 몸은 시들어도

혁명으로 끓는 피야 어찌 식으랴

간수 놈이 볼멘 소리 높아만 가고

때마다 먹는 밥은 수수밥이라

밤마다 새우잠에 그리운 꿈에

내 사람 여러 동지 안녕하신가

일제 놈과 주구들아 안심 말어라

70만 리 넓은 들에 적기 날리고

4억만의 항일 대중 돌격 소리에

열린다 감옥문이 자유세계로

의의와 평가

연길 감옥 항일 투쟁은 만주 지역에서 전개된 감옥 투쟁 중 유일하게 성공한 투쟁이다. 이 투쟁은 몸은 비록 구금된 상태였지만 일제에 항거하는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항전해 승리했다는데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투쟁하였던 항일 투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문화재로 활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2)
  • 독립 기념관, 한국 근현대사 학회, 『국외 항일 운동 유적(지) 실태 조사 보고서』 1(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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