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우구 항일 유격 근거지

한자 王隅溝 抗日 遊擊 根據地
중문 王隅沟游击根据地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의란진 왕우구 중촌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연길시 의란진 왕우구 중촌
정의

1932년 왕우구 인민 정부가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했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의란진 왕우구 중촌의 항일 근거지.

개설

1932년 ‘춘황 투쟁’ 이후 일제의 대토벌로 말미암아 연길현 의란구와 왕우구에 있었던 세력들이 왕우구로 집결하였다. 1932년 11월 2일 중국 공산당 동만특위와 중국 공산당 연길현 위원회의 지시로 왕우구 중촌에서 ‘왕우구 제1차 소비에트 대표 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는 북동, 왕우구 등 각 촌의 인민 대표 등 약 600여 명이 참석하였다. 회의에서는 선거를 통해 왕우구 인민 정부의 회장과 위원들을 선거하였다. 회장에는 허상묵이 임명되었다.

한편 하부 조직으로 각 촌의 지방 인민 정부가 조직되었다. 북동쪽에 왕우구 인민 정부를 기준으로 그 산 아래 북동·남동 지방 인민 정부가 조직되었다. 북동 지방 인민 정부 아래 다시 배초구(百草溝), 새 지방[新地方], 왕우구, 토성촌(土城村), 조양촌(朝陽村)의 다섯 마을에 촌 인민 정부가 조직되었다. 남동 지방 인민 정부 아래에는 북동(北洞), 삼전동(參田洞), 남동(南洞), 북동(北洞)의 네 마을에 촌 인민 정부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1934년 일제의 대토벌 때 왕우구 인민 정부 해체되고 각지로 해산하였다.

건립 경위

1932년 ‘춘황 투쟁’ 이후 일제의 대토벌로 말미암아 연길현 의란구와 왕우구에 있었던 세력들이 왕우구로 집결하였다. 1932년 11월 2일 중국 공산당 동만특위와 중국 공산당 연길현 위원회의 지시로 왕우구 중촌에서 ‘왕우구 제1차 소비에트 대표 대회’가 개최되고, 이 대회를 통해 왕우구 인민 정부가 조직되었다.

위치

왕우구 인민 정부는 현재 연길시 의란진 왕우구 중촌의 고성촌 학교가 있었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은 중국 공산당 동만특위와 연길현 위원회가 있던 곳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작은 개울 북쪽 지역이다.

의의와 평가

왕우구 인민 정부는 일제의 대토벌로 인하여 1932년부터 1934년까지 약 2년 간 활동하였다. 활동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당초 인민 정부에서 내세웠던 각종 개혁적인 조치들을 완수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왕우구 인민 정부는 항일 유격 전쟁의 발전과 유격 근거지를 공고히 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

참고문헌
  • 연변인민출판사, 『연변 문화유물 략전』(1989)
  • 최성춘 주필, 『연변 인민 항일 투쟁사』(민족 출판사, 북경, 1999)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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