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동 항일 기념지

한자 藥水洞 抗日 記念地
중문 药水洞抗日纪念地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현 소재지 화룡시 용문향 용문촌 약수동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에 있는 1930년의 약수동 항일 투쟁 기념비 설립지.

개설

1930년 5월 27일 약수동에서 약 1,000여 명의 농민들은 성대한 집회를 가지고 약수동 인민 정부를 성립시키고 주요 구성원을 선출하였다. 약수동 인민 정부는 중국 공산당 동만 특별 지부에서 제기한 투쟁 구호에 근거하여 일련의 행동 규칙을 제정하고, 5월 30일 대규모의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폭동 지휘부와 농민 적위대를 조직하였다.

대회가 끝난 후 약수동 농민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그의 앞잡이들을 타도하자’, ‘지주의 토지를 빼앗아 빈곤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자’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약수동 소학교의 소년 아동들도 붉은 넥타이를 매고 시위 행진에 참석하였다. 군중들의 시위 행진은 3일 동안 지속되었다. 마지막 날 박필준을 비롯한 친일파 네 명을 총살하고 고리대금업자 및 지주들에게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한편 5월 30일 밤 약수동 농민 적위대는 스스로 만든 구식총과 몽둥이를 가지고 두도구에 들어가 현지에서 합류하는 100여 명의 농민 폭동대와 합류하였다. 이들은 전화선을 절단한 후 두도구 일본 영사분관을 습격하였으며, 친일 단체 ‘조선인 민회’의 사무실을 불태워버렸다. 이 사건으로 일본 경찰들에게 100여 명이 체포당하자 인민 정부는 지하 조직으로 전환하였다.

위치

약수동 인민 정부는 현재의 화룡시 용문향 용문촌에 속한 약수동에서 서북쪽으로 3㎞ 떨어진 산기슭에 있었던 약수동 윗마을에서 성립되었다. 인민 정부 사무실로 사용한 건물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약 70㎡ 정도 되는 초가집이었다.

현황

인근 지역은 모두 밭으로 변하고 기념비석만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약수동 인민 정부가 존재했던 기간이 길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주 지역에서 처음으로 인민 정권이 성립되어 친일 세력의 타도와 일본 영사관 분관을 습격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인근 지역의 인민 정부의 성립과 항일 투쟁으로 확산되었다.

참고문헌
  • 연변인민출판사, 『연변 문화유물 략전』(1989)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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