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전적지

한자 鳳梧洞 戰鬪 戰績地
중문 枫梧洞反日战地旧址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1920년 6월 홍범도 등이 이끈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 추격대대를 섬멸한 전투지.

개설

1920년 6월 4일 대한 신민단의 독립군 부대가 함경북도 종성군으로 진입해 들어가 일본군 순찰 소대를 습격해 타격을 입혔다. 다음날 일본군 1개 소대 병력이 두만강을 건너 추격해오자, 대한 북로 독군부의 독립군은 삼둔자에서 일본군 추격대를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다.

함경남도 나남에 본부를 두고 있던 일본군 19사단은 삼둔자 전투에서의 패배에 분개하여 월강 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를 편성하여 독립군을 섬멸하고자 했다.

홍범도가 이끈 독립군 연합 부대는 봉오동의 산지에 매복하였다가 안천(安川) 소좌가 이끈 일본군 추격대대를 삼면에서 포위하여 궤멸시켰다. 일본군은 수많은 병력이 사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다.

건립 경위

봉오동 전적지는 지금 도문시에서 만든 저수지에 잠겨 있다. 다만 도문시 수도 공사 정문에서 댐에 이르는 중간 지점에 ‘봉오동 반일 전적 기념비’가 당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된 지역임을 알려주고 있다.

위치

도문시 수도 공사 정문에서 댐에 이르는 중간 지점이다.

형태

봉오동 반일 전적 기념비의 재질은 2층 기단 위에 백옥석으로 만들어졌다. 주위 대지는 약 20㎡ 정도이다. 기념비는 동쪽을 향해 세워져 있으며, 남쪽에 수령이 50년이 넘은 소나무가 있다. 4면은 벽돌로 쌓아 올리고, 시멘트로 보수해 놓았다. 동쪽 면 중간에는 6층 계단이 있어 관광객이 층계를 통해 기념비에 접근하도록 하였다.

현황

봉오동 전투가 전개되었던 봉오동 하촌·중촌·상촌은 도문시의 수원지(水源池) 건설로 수몰된 상황이다. 관광객들이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수도 공사의 동의를 얻어 봉오동 저수지 댐 입구까지 접근할 수 있다.

봉오동 승첩 기념비는 원래 승첩 장소가 아닌 봉오동 저수지 남쪽 200여m에 위치한 곳에 건립하였으며, 2010년 주변이 심하게 훼손되어 일부 수리하였다.

의의와 평가

봉오동 전투는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본격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승전한 독립군의 사기가 크게 고조되었으며, 1920년대에 독립 전쟁이 활발히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 연변인민출판사, 『연변 문화유물 략전』(1989)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2)
  • 박환, 『(박환교수의) 만주 지역 한인 유적 답사기』(국학 자료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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