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연 옛 집

한자 金躍淵 옛 집
중문 金跃渊故居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명동촌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901
현 소재지 길림성 용정시 명동촌
원소재지 명동촌
정의

1901년 김약연장재촌에 거주할 당시에 살림집과 규암재 서당을 개설했던 곳.

개설

김약연(金躍淵)[1868~1942]은 1868년 함경 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31세 되던 1899년 2월,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만주의 땅을 사들이고 두만강을 건너 장재촌에 정착했다. 이후 ‘규암재’를 시작으로 서전 서숙, 명동학교 등의 설립과 운영에 앞장서 북간도 한인들의 민족 정신을 일깨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건립 경위

김약연은 회령에서 장재촌으로 이사한 후 2년 만인 1901년 기와집을 짓고 자신의 호를 따 ‘규암재’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이곳에 서당을 개설하여 후학들을 가르치는데 힘을 쏟았다.

위치

김약연의 고택인 규암재명동촌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장재촌’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있다.

형태

지붕을 기와로 덮은 5칸의 집이다.

현황

김약연의 후손인 김범춘이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북간도 지역의 근대적인 교육 운동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참고문헌
  • 강용권,『죽은자의 숨결, 산자의 발길』하(장산, 1996)
  • 백민성, 『유서 깊은 명동촌』(연변인민출판사, 2001)
  • 서대숙, 『간도 민족 독립운동의 지도자 김약연』(역사 공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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