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3·13 반일 의사릉

한자 3·13 反日 義士陵
중문 3·13反日义士陵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능묘
관련인물 현봉률|김승록|박문호|김병영|정시익|현상노|김흥식|이유주|차정룡|공덕흡|김태균|장학관|김종묵|허준언|박상진|채창현|최익선
관리자 용정 3·13 기념 사업회
문물|보호단위등급 용정시 중점 문물 보호 단위
조성 시기/일시 1919년 3월 17일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16일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9년
문물 지정 일시 1994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0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3년 5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
현 소재지 길림성 용정시 합성리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용정(龍井) 지역에 있는 1919년의 ‘3·13 운동’ 당시 순국한 애국 지사들의 묘역.

개설

북간도 지역 한인들은 1919년 3월 13일 서전벌에서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고, 명동학교와 정동 학교 학생들을 선두로 태극기를 흔들면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시위 행진 저지를 위해 배치되었던 맹부덕 부대가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가해 현장에서 13명이 순국하고, 부상자 중 병원에서 치료 받는 과정에서 6명이 더 사망하였다. 이들의 장례식은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월 17일 ‘조선 독립 기성회’ 주도로 진행되었다. 순국자들의 유해는 용정시에서 남쪽으로 4㎞[10리] 떨어진 허청리의 양지바른 언덕에 안장되었다. 2014년 현재 이곳에 총 13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위치

용정시 동남쪽 4㎞ 지점인 합성리에 있는 생물 세균 비료 공장의 남쪽 자그마한 산언덕의 서쪽 비탈에 위치해 있다. 공장 남쪽 담장 밑으로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생겨 이곳을 통해 3·13 반일 의사릉으로 올라갈 수 있다.

변천

3·13 반일 의사릉은 최근까지 방치되어 오다가 1989년 최근갑을 비롯한 용정 지역 향토 사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최근갑은 먼저 “용정 3.13 수난 의사 추념 준비 위원회”를 조직하여 1990년 순국자들의 묘소를 찾았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3·13 만세 운동 당시 순국자들을 기리기 위해 나무로 된 비석을 건립했으며, 1993년에는 화강암으로 “3·13 반일 의사릉”이라 새긴 비석을 건립하였다. 1995년에는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서 주변 지역을 정화하고 성역화 하였다.

형태

3·13 반일 의사릉 기념비가 맨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 뒤 앞줄에 9개, 뒤쪽 줄에 4개의 무덤이 있다.

금석문

3·13 반일 의사릉 기념비 앞면에는 “3·13 반일 의사릉”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3월 13일 만세운동과 3월 17일 장례식에 관한 설명, 그리고 이곳에 묻힌 1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7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현봉률, 김승록, 박문호, 김병영, 정시익, 현상노, 김흥식, 이유주, 차정룡, 공덕흡, 김태균, 장학관, 김종묵, 허준언, 박상진, 채창현, 최익선.

현황

1994년 용정시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현재 용정 3·13 기념 사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3·13 추모제와 학술 회의가 열리고 있다. 청명과 추석 때에는 참배 행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방문객을 위한 참배단 진입로가 비좁기 때문에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의의와 평가

1919년 용정 서전 대야의 3·13 만세운동은 국내외에서 전개된 수많은 3·1 만세운동 중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이후 북간도에서 본격적인 만세 운동이 펼쳐지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 강용권, 『죽은자의 숨결, 산자의 발길』상·하 (장산, 1996)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1)
  • 김병기·반병률, 『국외 3·1 운동』(독립 기념관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 2009)
  • 독립 기념관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http://oversea.i815.or.kr)
  • 세계 한인 신문 (http://www.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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