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랑촌 전투

한자 漁郎村 戰鬪
중문 渔郎村战斗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관련인물/단체 김좌진|홍범도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0년 10월 22일
발생|시작 장소 화룡시 어랑촌
종결 장소 화룡시 어랑촌
정의

1920년 10월 22일 어랑촌 부근 야계골(野鷄谷) 874 고지에서 북로 군정서군, 홍범도 연합 부대와 일본군 아즈마 지대의 주력 부대가 벌인 전투.

개설
역사적 배경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참패한 일본군은 간도 지방에서 한인 무장 부대들의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1920년 10월 2일 간도 지방으로의 출병의 구실로 훈춘 사건을 조작하고 10월 14일 본격적인 간도 지방 무력 침공을 선언하였다. 10월 17일부터 본격적인 군사 행동에 들어간 일제는 조선 주둔 일본군 19사단을 중심으로 약 2만 명이 넘는 병력을 작전에 투입하였다.

그 부대들 중 용정·국자가[연길]·두도구 방면의 초토를 책임진 아즈마 지대는 1920년 10월 17일 홍범도 부대와 김좌진 부대가 어랑촌, 청산리 부근에 주둔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10월 18일에 부대를 나누어 삼도구 청산리 부근의 김좌진 부대와 와룡구 어랑촌 부근에 있는 홍범도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아즈마 지대 중 북로 군정서 김좌진 부대의 토벌 명령을 받은 야마다[山田] 연대는 10월 20일 청산리에 도착하여 북로 군정서 김좌진 부대를 포위하려 시도하였다. 그러나 북로 군정서 김좌진 부대는 백운평 일대에서 매복전을 벌려 야마다 연대에 타격을 주었다. 또한 10월 22일 천수동에서 일본군의 기병대를 전멸시켰다.

한편 아즈마 지대 중 홍범도 부대에 대한 토벌을 담당한 이이노 대대는 10월 22일 완류구에서 홍범도 부대에 타격을 입고, 천수동에서도 김좌진 부대와 홍범도 부대의 연합 작전에 의해 타격을 입었다. 이와 같이 일본군 수비대가 큰 피해를 입자 이이노 부대는 홍범도 부대를 괴멸시키기 위해 추격을 계속하였다.

경과

어랑촌 전투는 전반 청산리 전투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치열한 전투였다. 전투는 1920년 10월 22일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어랑촌 부근 야계골(野鷄谷) 874 고지에서 북로 군정서군, 홍범도 연합 부대와 일본군 아즈마 지대의 주력 부대 사이에 진행되었다.

어랑촌 전투는 어랑촌 서쪽, 천리봉 남단, 남완류구의 동남단, 야계골에서 서북쪽으로 2.5㎞ 올라가 해발 796m인 남쪽 산과 그 옆의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산에서 진행되었다. 상기 전투 지점은 문헌에 기재된 894 고지인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부르는 어랑촌 남단이었다.

1920년 10월 22일 아침 5시경에 천수동의 적군 기병 소대를 섬멸한 북로 군정서군은 아즈마 지대의 본부가 어랑촌에 있고 또 천수동에서 도망쳐나간 적 4명이 어랑촌 일본군 본부에 가서 보고하면 일본군 대부대가 곧 공격하여 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먼저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기 위하여 일부분 부대들은 어랑촌 서남쪽 1.5㎞ 되는 산 고지에 보내어 일본군의 진로를 막고 주력 부대는 야계골 고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행동을 개시하였다.

얼마 후 일본군 제27 기병 연대 주력과 일부 보병은 가노 대좌의 지휘하에 어랑촌에서 출발하여 천수동 골짜기 어귀에 들어섰다. 독립군 부대는 추격해 오는 적들에게 사격을 가하면서 야계골로 퇴각하였다. 아침 9시부터 진행된 전투는 독립군 부대와 일본군과의 고지 쟁탈전이었다. 먼저 고지를 차지한 독립군 부대는 유리한 지형을 활용하여 일본군의 진공을 물리쳤다.

12시 30분 홍범도 부대의 종적을 찾아 추격하던 이이노[飯野] 대대와 아즈마 소장이 지휘하는 일본군 부대도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리하여 이 전투에 투입된 일본군은 기병대 약 250명, 아즈마 지대 약 600명, 이이노 대대 약 100명 합계 1,000명 정도였다.

전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치열해졌다. 독립군 부대의 희생도 늘어갔다. 오후 2시 완류구 전투를 마치고 봉밀구 쪽으로 퇴각하던 홍범도 연합 부대가 북로 군정서군이 전투하고 있는 야계골로 들어섰다. 홍범도 연합 부대는 완류구 전투에서 큰 손실을 보지 않았기에 원래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홍범도 부대는 야계골에 들어서자 김좌진 부대가 차지한 796 고지 옆의 그보다 좀 더 높은 고지를 점령하고 김좌진 부대를 향해 진공하여 올라오는 일본군을 향해 사격하였다.

홍범도 부대의 참전은 김좌진 부대에 대한 일본군의 진공에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이리하여 일본군은 병력을 분산하여 김좌진 부대와 홍범도 부대에 동시에 진공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는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계속되었다. 전투장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자 일본군의 진공은 힘을 잃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김좌진 부대와 홍범도 부대는 어둠을 타서 차례로 전투장을 퇴각하였다.

참고문헌
  • 중국 조선 민족 력사 발자취 총서 편집 위원회, 『개척』중국 조선 민족 력사 발자취 총서(1), 민족출판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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