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5·7 반일 폭동

한자 5·7 反日 暴動
중문 5·7反日暴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길림성 길림시 반석시 하마하자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관련인물/단체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 양림, 이동광, 이홍광, 중국 공산당반석 중심현 위원회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2년 5월 7일
발생|시작 장소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반석현 하마하자
정의

1932년 5월 7일 중국 공산당 반석 중심 현위원회와 하마하자의 농민 및 항일 단체들이 전개한 시위 운동.

역사적 배경

1931년 9월 18일 일본이 만주를 침략했다. 중국 공산당 만주성 위원회는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적극 항전을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은 만주 지역의 농민들을 중심으로 농민 운동에 주력했다. 이들은 1931년 추수 투쟁과 다음해 춘황 투쟁 등의 대중 봉기를 주도하며 농민들의 생존권 쟁취 요구를 반제·반봉건 운동으로 결합시켜 중국 공산당만주 조직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중국 공산당 반동구(磐東區) 위원회 서기 이동광(李東光)은 농민들과 함께 항조분량(抗租分糧) 투쟁을 전개하는 등 농민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31년 만주 지역 이통(伊通)에서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적위대가 조직되었다. 적위대는 대장 이홍광(李紅光)을 비롯한 7명으로 조직된 무장 조직이었다. 적위대 역시 농민들과 함께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5월에는 만주성 위원회에서 파견된 양림과 이 지역에서 농민 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이동광·이홍광 등이 중심이 되어 5·7 항일 운동을 계획하였다.

경과

중국 공산당 반석 중심 현위원회는 5월 1일부터 이홍광의 지휘 아래 4~5일간 항일 운동을 반석현에서 전개하였다. 참여 인원은 약 1,000여 명이었다.

1932년 5월 7일 반석 중심 현위원회는 하마하자에서 항일 집회를 열고 일제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였다. 집회가 끝나자 참여했던 항일 단체와 농민들이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반일 시위 행진을 단행하여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을 처단하였으며 그들의 창고를 열어 식량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또한 일본군의 출동을 지연시키기 위해 철도와 교량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5·7 반일 폭동은 남만주 지역 항일 투쟁의 새로운 발단으로서 일제와 친일 세력에 타격을 주었고 남만주 지역 항일 역량이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참고문헌
  • 양소전 외 4명, 『중국 조선족 혁명 투쟁사』(연변인민출판사, 2009).
  • 장세윤,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1930년대 만주 지역 항일 무장 투쟁)』 51(경인 문화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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