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在中國 韓人 靑年 同盟 |
---|---|
중문 | 在中韩人靑年同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길림성 길림시 반석시 호란집창자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성격 | 한인 청년 운동 단체 |
---|---|
설립 시기/일시 | 1928년 5월 26일 |
최초 설립지 | 길림성 반석현 호란집창자 |
주소 변경 이력 | 길림성 길림시 반석시 호란집창자 |
1928년 5월 26일 길림성 반석현 호란집창자(呼蘭集廠子)에서 조직된 한인 청년 운동 단체.
재중 한인 청년 동맹은 한인들의 총 결속, 조선 독립의 완성, 중국 국민 운동 참여, 세계 혁명 완성, 제국주의 전쟁 위기와의 전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재중 한인 청년 동맹은 1928년 5월 26일 길림성 반석현 호란집창자(呼蘭集廠子)에서 조직되었다. 집행위원은 김만선·최환(崔煥)·이병하(李炳夏) 등이 선임되었고 상무 집행위원회는 김만선[위원장]·황기찬[서무부]·이병하[조직부] 등으로 구성되었다.
재중 한인 청년 동맹의 활동 구역은 모두 11개 구(區)였다. 1928년 9월 기관지로 『청년전위(靑年前衛)』를 발간하였다. 이들은 ML파가 주도권을 장악한 조선 공산당 만주 총국의 외곽 단체 역할을 하였다.
재중 한인 청년 동맹은 민족 유일당 운동 과정에서 개인 본위 조직론을 주장하는 촉성회 계열의 주도 세력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1928년 8월 29일 제19회 국치 기념일을 맞이하여 전 동맹원에게 격함이란 포고문을 통해 한국의 독립과 중국 혁명, 전 세계 피압박 민족과 무산 계급의 해방을 강조하였다.
재중 한인 청년 동맹은 1920년대 후반 민족 유일당 운동에 호응하여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였지만, 국내의 청년 총동맹과 연대보다는 독자성을 지향하였다. 만주 지역에서 유력한 청년 조직인 동만 청년 총동맹에 불참한 사실은 한계성으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