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흥촌[상지시 하동조선족향]

한자 北興村[尙志市 河東朝鮮族鄕]
중문 北兴村[尚志市河东朝鲜族乡]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하동조선족향 북흥촌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행정 구역
가구수 340가구
인구[남,여] 1,308명
개설 시기/일시 1984년
변천 시기/일시 1959년
정의

흑룡강성 하얼빈시 상지시 하동조선족향에 속하는 마을.

형성 및 변천

북흥촌은 1930년을 전후하여 5~6호 조선인들이 마연하 동쪽으로 이주해 와서 수전을 개척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비롯되었다. 1933년 5월 일제 강점기에 하동 농장이 설립되면서 1934년 4월 제2차 집단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97호 458명이 농무계 소속 18계·19계·20계·21계·22계 마을을 이루었다. 일본이 관리하는 농무계 연합회와 촌 공소가 관할하였다.

해방 이후 1946년 6월 향 정부가 설립되면서 북흥촌은 8개 마을을 통합하여 하나의 행정 관리 구역으로 통합되었으며, 1959년에는 북흥대대로 불리었고, 1984년에는 명칭이 북흥촌으로 변경되어 산하에 흥농[18계]·혁신[19계]·신흥[20계]·북진[21·22계] 4개 자연툰을 구성했다.

현황

북흥촌은 향 정부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6㎞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동북쪽으로 북련하촌, 남쪽으로 태양촌, 서쪽으로 마연하를 사이에 두고 장수향과 접하고 있다.

2002년 현재 이 지역에는 340호, 1,308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경지 면적은 666.9㏊로 모두 수전이다. 특히 북흥촌은 벼 농사를 단일 산업으로 하는 특징이 있다.

산종·점종·줄종 등 여러 가지 재배 방법으로 벼 농사를 지었으며 1974년부터는 전체 농지에 모내기를 하였다. 1970년대부터는 과학기술 실험 소조를 세우고 여러 방면에 걸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보급하여 해마다 벼 수확을 증산하였다. 특히 육모 방법에서는 1970년대 초 수상 육모, 무토 육모, 1974년에는 떠덕모, 1978년에는 기계모, 1984년에는 한육모를 도입하고 초희식 재배 기술을 전 농지에 보급하였다.

이후 벼 수확을 대폭 증산하여 1970년 800여 톤에서 1985년에 1,370톤으로 570톤을 증산하였다. 2000년에 이르면 벼 생산량은 2,500톤을 넘었으며, 1994년에는 1,890톤의 벼를 생산하여 상지시 역사상 한 해 판매량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상지시 조선 민족사 편집 위원회, 『상지시 조선 민족사』민족 출판사, 2009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