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청년당 국자가 당부

한자 天道敎 靑年黨 局子街 黨部
중문 天道敎靑年党局子街党部
분야 역사/근현대|종교/신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천도교 청년 단체
설립자 천도교 국자가 교구
설립 시기/일시 1921년 2월
정의

1921년 간도 국자가에 설립된 천도교 청년회 지회.

개설

1906년 2월 천도교 중앙 총부가 설립되면서 북간도 용정에도 교구가 설치되었다. 이용구 한때 일진회 세력이 천도교 이탈과 시천교 분립으로 교세가 크게 약화되는 계기를 맞았다. 총부에서 황희룡과 김득운을 파견한 결과로 화룡현·연길현·국자가·용정 등지에 각각 교구가 설립되는 등 교세가 확장되었다. 1921년 천도교가 창도된 지 60년을 맞는 ‘신유포덕’으로, 교세를 크게 확장시켰다. 교단적인 차원에서 대대적인 포교와 국내외 항일 세력과 연대는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설립 목적

1919년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운동에서 천도교는 교단적인 차원이나 교인들 상당수가 직접 항일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열기는 천도교 청년회 결성으로 귀결되는 동시에 국내외에 지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1921년 2월 ‘신유포덕’ 일환으로 천도교 청년회 연길 지회와 용정 지회, 화룡현 교구는 협성 포덕회를 결성하고 대교구를 설치하기로 결의하였다. 청년 운동 활성화와 포교 활동 증진을 위한 일환으로 천도교 청년당 국자가 당부도 조직되었다.

변천

천도교 청년당 국자가 당부는 1921년 2월 창립 당시 회장은 김주빈(金周斌)이었고, 12월에 박림(朴林)으로 교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천도교 청년당 국자가 당부는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포교 활동 전개와 민족 의식을 일깨우는 교육 활동에 매진하였다. 한민족으로서 정체성 유지와 자긍심 고취를 위한 강연회·강습소 운영 등은 이를 반증한다. 당시 이돈화(李敦化)도 만주 지역 순회 강연 중 이곳에서 실시했다. 1921년 8월 국치일과 11월 워싱턴 회의 개최에 즈음하여 대규모 만세 운동도 계획하였다. 비밀 단체 천도교 청년 동맹회 결성은 이러한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현황

천도교 국자가 종리원은 2차례나 이사하는 등 청년회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천도교의 포교에 의한 교세 확장과 동흥 중학교·협성 종학 강습소 등 민족 교육 시행은 다양한 민족 해방 운동을 전개하는 초석이었다.

참고문헌
  • 『천도교회 월보』 (38·43·128)
  • 현규환, 『한국 유이민사』 상(어문각, 1967)
  • 천도교 청년회 중앙 본부, 『천도교 청년회80년사』(2000)
  • 성주현, 「간도 지역 천도교와 민족운동」(『간도와 한인 종교』,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종교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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