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묘

한자 孔廟
중문 孔庙
분야 역사/근현대|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사당
건립 시기/일시 1921년
최초 설립지 연길, 용정, 화룡
정의

1921년 조선인들이 연길·용정·화룡 등지에 세운 공교회 관련 사당.

개설

1911년 신해 혁명 이후 민주 공화제를 부정한 원세개는 공맹지도(孔孟之道)를 국교로 정하는 동시에 1912년 10월 7일 공자 탄생 기념일을 계기로 각종 존공복고(尊孔復古) 하는 단체가 조직되었다. 간도 지역 한인 사회에 공교회 지회 설립은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연길은 길림 동남로에 위치한 중요한 지역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은 공묘를 세워 집회·배성(拜聖)·독경(讀經)을 하여야 한다.”는 사실에서 공자를 성인으로 존경해야 함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공자교를 창명(昌明)하고 인도(人道)를 부식하는 것을 종지로 하는 데 있었다.

변천

봄과 가을에는 정기적인 제례를 거행하는 등 회원 간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을 배양하였다. 강학(講學)을 통한 전통적인 가치관을 진작시키는 육영 사업도 병행하였다. 1921년 7월 11일 개학한 대성 중학교는 공맹지도(孔孟之道)를 가르치는 교육 산실이었다. 주요 교재는 사서오경과 『명심보감』 등 윤리·도덕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1926년 연길 공교지회는 훈춘·화룡·왕청·안도까지 확대되어 150개 교구에 1만 5천명 회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주요 지역에는 공묘를 설치하여 제례와 회합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공묘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존중하는 이주 한인의 정신적인 구심체였으나 시대적인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동시에 갖는 역사적인 유산이다.

참고문헌
  • 손춘일, 「간도 조선인사회와 공교회」(『간도와 한인종교』,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와종교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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