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 일보』

한자 滿鮮 日報
중문 满鲜日报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신문
관련인물 이성재|진학문|최남선|염상섭|홍양명
창간인 이용석
판형 8면
창간 시기/일시 1937년 10월
폐간|종간 시기/일시 1945년
정의

1937년 만주국에서 조선인 통제를 위해 간행한 한국어판 신문.

개설

1937년 10월 만주국(滿洲國) 내의 한국어 신문이었던 장춘[당시 신경]의 『만몽 일보(滿蒙日報)』와 용정의 『간도 일보(間島日報)』를 통합한 신문이다. 이용석(李容碩)이 신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사단 법인을 주식 회사로 개편하여 10월 21일자 발간분부터 『만선 일보(滿鮮日報)』로 바꾸었다. 『만선 일보』는 만주국 유일의 한국어 신문이었다.

구성/내용

『만선 일보』는 조간 8면으로 발간되었고, 발생 부수는 2만여 부에 월 구독료가 1원이었다. 일본의 자금 지원을 통해 운영되면서 창간 이듬해에는 조·석간 체제로 발행하고 조선에도 지국을 세우는 등 사세가 빠르게 확장되었다.

만선 일보사는 민족 협화 정신을 고무하고 재만 조선인의 국민적 자각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신문의 논조도 주로 황국신민(皇國臣民)을 선전하는 데 치중하였다.

변천과 현황

1940년 만주국 정부가 만주 홍보 협회를 해산시켰으며, 동시에 『만선 일보』도 만주국 정부의 직속 기관이 되어 해방 때까지 만선일여(滿鮮一如), 오족협화(五族協和)를 창달한다는 명목으로 만주국의 언론 통제 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운영 당시 이성재(李性在)가 『만선 일보』 사장과 이사장을 지냈고, 진학문(秦學文)과 최남선(崔南善)이 고문을 역임한 바 있으며, 편집국장으로 염상섭(廉想涉), 홍양명(洪陽明)이 참여하는 등 당대의 유명 문인들과 언론인들이 『만선 일보』와 관련을 맺었다. 후에는 주로 일본인이 고위직을 맡아 운영하였다.

1945년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이 패망한 뒤 금전적 후원이 끊기어 결국 폐간되었다.

의의와 평가

만주국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일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운영된 대표적인 어용 신문이다.

참고문헌
  • 정진석, 『한국 언론사』(나남,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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