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대한 독립 신문』

한자 大韓 獨立 新聞
중문 大韩独立新闻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간도 국민회의 기관지
관련인물 구춘선, 이익찬, 윤준희, 방원성, 마틴
창간 시기/일시 1919년
정의

1919년 3·1 운동 직후 북간도의 간도 국민회가 발간한 기관지.

개설

간도 국민회는 1919년 3·1 운동 직후에 북간도 지역 한인 대표들이 발기한 독립운동 단체로서, 무장 투쟁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치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일제로서 당시 조직된 반일단체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로 평가할 만큼 간도 국민회의 규모는 컸다. 간도 국민회는 보다 체계적으로 간도 지역 한인들에게 간도 국민회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주간지 『대한 독립 신문』을 발행하였다.

창간 경위

『대한 독립 신문』은 구춘선과 이익찬·윤준희·방원성 등이 영국인 마틴이 경영하는 제창 병원(濟昌病院)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등사판으로 만들었다.

형태

『대한 독립 신문』은 타블로이드판보다 작았으며, 등사로 인쇄하였다.

구성/내용

신문의 성격이 독립운동을 내외에 홍보하는 데 있기 때문에 동포 사회에 대한 부분이 많다. 1919년 6월 5일자 「근고 해외 동포 형제(謹告海外同胞兄弟)」라는 논설에서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도 남과 같은 자유와 행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 이것을 얻을 만한 혈성(血誠)을 주시옵소서."라는 글을 실었다. 오늘날 외신란에 해당되는 ‘내외 전서 구(內外傳書鳩)’라는 고정란에서 해외 여러 곳에 있는 독립 지사들의 활동 상황과 외신을 보도했다.

변천과 현황

1920년 2월 일본 문서에는 한국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는 기관지로서 본부는 연길현(延吉縣) 옹성랍자(甕聲磖子)에 두고 김정과 고동환이 발간 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1920년 6월까지 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대한 독립 신문』은 간도 국민회가 활동하는 데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선전 홍보용 기관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참고문헌
  • 장우권 외, 『재외한인 문헌정보자원과 실제』(집문당, 2005)
  • 「不逞 鮮人 獨立 運動 現況에 관한 건」(『불령단 관계 잡건-조선인의 부-재만주의 부(14)』(1920.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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