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 민보』

한자 大東 民報
중문 大东民报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길림성 길림시 반석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기관지
관련인물 양기탁|고활신|김이대|박범조|김탁
창간인 이상용|김동삼
발행인 정의부
판형 4절 8면
총호수 제3호[1927. 1. 1.]
창간 시기/일시 1926년
정의

1924년 정의부(正義府)에서 발행한 기관지.

개설

1924년 11월 24일 통의부(統義府)·서로 군정서(西路軍政署)·광정단(光正團)·의성단(義成團) 등 8개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해 성립한 정의부(正義府)는 1920년대 중 후기 재만 독립군 정부로 활동하였다. 정의부는 상해 임시 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용(李相龍)김동삼(金東三)이 이끌었던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단체로 남만(南滿)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을 기반으로 한민족의 자립 사회(自立社會) 건설을 위한 민정 활동(民政活動)을 펼치는 한편, 이청천(李靑天)김창환(金昌煥) 등을 사령관으로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抗日) 군정 활동(軍政活動)을 펼쳤다.

『대동 민보』는 한인 자치 및 농민들의 생활 안정과 홍보를 위해 발간된 기관지라 할 수 있다.

창간 경위

정의부에서는 상해 독립신문사에 사람을 파견하여 신문 발간에 필요한 제반 여건을 마련하여 1926년 9월 15일 길림성 반석현에서 『대동 민보』를 창간하였다.

초기에는 양기탁(梁起鐸)과 고활신(高豁信) 등이 신문 발간에 참여하였으며, 후에 김이대(金履大)와 박범조(朴凡祚), 김탁(金鐸) 등 세 명을 책임 사원으로 선임하여 진행하였다.

형태

『대동 민보』의 간행 주기는 부정기적이나 월보(月報)형태로 발행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4절지 크기의 8면으로 구성되었으며 다음 차호에 실릴 내용을 미리 게재하여 알려주었다.

구성/내용

『대동 민보』는 정의부의 활동과 주장을 그대로 실었다. 특히 한인 소작 문제 등을 많이 다루었다. 1920년대 남만 지역의 소작료는 보통 수확량의 30∼50%였다. 그러나 이 같은 비율은 중국인 소작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었고, 중국인 지주들은 한인 소작인들에게 이보다 훨씬 가중된 소작료를 받았다. 이러한 한인들의 현실적 문제를 조명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기사를 게재하여 농민들의 의식 개조를 꾀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회 혁명과 독립운동에 대한 기사도 많이 실었기 때문에 일본이 상부에 올린 보고서를 보면 민족주의를 지향하나 공산주의적 성격이 강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변천과 현황

『대동 민보』는 기부금으로 운영된 신문이었다. 창간호는 1926년 9월 15일자로 되어 있지만 실제 간행일은 10월 1일 이었다. 제2호는 같은 해 12월 1일에 발행되었고, 제3호는 1927년 1월 1일자로 발행되었으나 그 뒤로는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정의부는 교육과 산업의 발전을 중요하게 여겨 학교 설립과 농민 조합 운영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성격을 보건대 『대동 민보』는 정의부의 활동을 선전하고 한민족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한 기관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장우권 외, 『재외한인 문헌정보자원과 실제』(집문당,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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