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낭아

한자 大朗雅
중문 大朗雅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인물
성별 남성
본관 미상
출생 시기/일시 연대 미상
혼인 시기/일시 연대 미상
활동 시기/일시 발해 무왕대
몰년 시기/일시 연대 미상
정의

발해무왕(武王)의 동생으로 당나라에 파견된 왕족.

활동 사항

대낭아발해 제2대 왕인 무왕의 동생으로 730년 이래 당나라에 억류되었다가, 736년 발해로 돌아왔다.

무왕은 732년 등주(登州) 공격으로 인해 단절된 대당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736년 3월 왕제 대번(大番)을 처음으로 파견한 이래, 다음 해인 737년에도 3차례 사신을 파견하였다. 그런데 이 무렵 현종이 무왕에게 보낸 칙서에 당이 억류하던 발해의 사신 대낭아(大郎雅)를 귀환시킨 사실이 전하고 있다. 730년 정월에 왕제 대낭아가 당에 파견된 사실과 관련해 보면 대낭아가 억류되었던 것은 발해의 등주 공격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문예(大門藝)가 국법을 어긴 죄 때문에 유배되었다는 점으로 볼 때, 대문예 암살 사건과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대낭아의 귀환에 응하여 발해는 등주 공격으로 얻은 전쟁 포로를 당에 송환하였다.

참고문헌
  • 『신당서(新唐書)』
  • 김육불,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신서원, 2008)
  • 김종복, 『발해 정치 외교사』(일지사, 2009)
  • 한규철, 『발해의 대외 관계사』(신서원, 1995)
  • 동북아역사재단 편,『발해의 역사와 문화』(동북아역사재단,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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