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인구 고분

한자 石人溝 古墳
중문 石人沟古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대포시하진  
시대 고려/고려
상세정보
성격 고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8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1년
소재지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대포시하진(大蒲柴河鎭)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돈화시(敦化市) 대포시하진(大蒲柴河鎭)에 있는 금(金)대의 고분.

위치

석인구 고분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대포시하진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15㎞ 떨어져 있는 숭산준령(崇山峻嶺)에 위치하고 있다. 부이하(富爾河)가 대포시하진(大蒲柴河鎭)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데, 10㎞ 흘러가면 굽이가 변하여 동남쪽으로 흘러간다. 5㎞를 더 흘러가면 그 곳에서 작은 시내가 부이하로 유입된다. 이 시내의 이름이 석인구하(石人溝河)이다. 석인구하의 양쪽 연안은 높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시내의 입구에서 5㎞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북쪽 연안에 비교적 넓은 충적지대가 있다. 이곳은 서쪽, 북쪽, 동쪽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으로는 석인구하에 이른다. 고분은 즉 이곳 완만한 골짜기의 북부 한쪽에 구석에 위치한 산간 평지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농민들의 말에 의하면 몇 십 년 전에는 고분 전면에 돌기둥[石柱], 돌인간[石人], 돌사자[石獅], 돌호랑이[石虎], 돌양[石羊]이 늘어서 있었다. 1931년 9·18 사변 후 일본 고고학자들이 고분을 조사하였고, 겨울에 사람을 보내어 수로를 통해 돌인간, 돌사자, 돌호랑이, 돌양 등을 대포시하(大蒲柴河)로 운반해 갔다고 한다.

1958년 중국 각 성(省)의 기관에서 문물을 조사할 때 연변 문물조사단[延邊文物普査隊]도 조사에 착수하였다. 아울러 석상에 대해 측량하여 제도하였다. 돌기둥은 높이 2.36m, 직경(直徑) 0.30m[가장 넓은 부분]이다. 몸통은 육면체인데, 3면은 넓고 3면은 좁다. 넓은 면은 0.22m, 좁은 면은 0.16m이다. 돌사자는 길이 1.60m, 너비 0.46m이고, 웅크려 앉아있다[蹲式]. 돌양은 길이 1.31m, 높이 0, 60m인데, 밑받침[底座]과 함께 재면 0.74m이다. 돌인간[石人]은 훼손되어 완전하지 않다.

출토 유물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돌로 만든 함[石函]1건이 있다. 화강암(花崗巖) 계열로 만들어 졌으며, 길이 85㎝, 너비 60㎝, 높이 30㎝이다.

현황

석인구 고분은 이미 훼손되었고, 터에는 겨우 돌로 만든 함 1개가 남아 있을 뿐이다. 돌로 만든 함 옆에 작은 토갱(土坑)이 하나 있는데, 구덩이 입구[坑口]는 1㎡ 정도이다.

의의와 평가

석인구 고분은 출토된 유물을 통해 금대(金代)의 고분임을 알 수 있다. 고분에 있던 석상들의 형상은 예스럽고 소박하며 생동감 있는데, 서란 소성자(舒蘭小城子)에 있는 금대(金代) 무덤의 석조(石雕)와 비슷하며 금대 유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고분이 있는 부이하(富爾河) 상류 유역은 금대 유물이 밀집해 있는 곳이며, 금대(金代)의 군사·문화 요충지였다. 이 고분의 형태와 구조 및 석상(石像)의 설치 정황을 볼 때 묘의 주인은 사회의 상층 계층이었을 것이다. 이 고분에 대한 연구는 부이하 유역의 금대(金代)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참고문헌
  • 『敦化市文物志』(길림성문물지편수위원회, 1985)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