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벽 고분군

한자 影壁 古墳群
중문 影壁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계관향 영벽촌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석광봉토묘, 움무덤(토광묘)
크기 4,000㎡[면적]
발굴 조사 시대/일시 1983년
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계관향 영벽촌
모형 전시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계관향 영벽촌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계관향 영벽촌에 있는 발해 시대의 고분군.

위치

영벽 고분군은 계관향(鷄冠鄕) 영벽촌(影壁村) 동남 1㎞에서 공가점촌(公家店村)으로 나아가는 도로변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도로에 기댄 남측은 남청하(南淸河)가 동남에서 서북으로 흘러 계관하로 유입되며, 북쪽은 연이어 우뚝 솟은 높은 산에 기대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영벽 고분군은 1983년에 도로 건설 당시 취토(取土)할 때 노출되었다. 취토한 단면을 보면, 고분군이 길게 이어진 범위는 비교적 길며, 도로를 따라 약 80m의 단면 위에 노출된 무덤이 총 12기이다.

형태

영벽 고분군의 무덤 형식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토광묘[土坑竪穴封土墓], 다른 하나는 석광봉토묘(石壙封土墓)이다. 석광(石壙)은 작은 돌로 1·2층을 쌓았으며, 묘광(墓壙)은 비교적 얕다. 석광봉토묘는 일반적으로 모두 화장했으며, 석광 안에는 목탄·홍소토(紅燒土) 덩어리와 약 7∼10㎝ 두께의 잿더미가 남아 있다. 잿더미 안에는 불탄 인골 조각들이 섞여 있다.

토광묘는 아직 화장하지 않았다. 취토 단면에서 관찰되는 지층을 보면 제1층은 산의 토양이 유실되어 씻겨온 후기의 퇴적으로 두께가 30∼50㎝로 고르지 않다. 제2층은 흑색토로 두께가 약 10∼20㎝이며, 원래의 표토층이다. 제3층은 황사토(黃砂土)이다. 무덤은 제2층 아래를 파내고 있다.

출토 유물

영벽 고분군에서는 토기 조각들만 채집되었다. 토기는 니질(泥質)에 소량의 가는 모래가 섞였으며, 홍갈색이 다수를 차지하고 흑갈색은 소수이다. 기형은 다수가 관(罐)이며, 모두 수제(手製)이며, 기벽(器壁)은 비교적 얇으며, 소량의 구연(口沿)은 천천히 물레를 돌려 가공했다. 구연은 모두 넓은 입[敞口]이며, 구연 아래에는 퇴문(堆紋) 한 줄을 부가하였다. 어떤 것들은 퇴문 위에 사압인문(斜壓印紋)을 새겼으며, 복부 위에 물결무늬 3줄을 새긴 것들도 있다.

의의와 평가

영벽 고분군에서 채집한 토기편의 특징은 백초구(百草溝) 유적·나자구(羅子溝) 유적연변 선사 시대 유적지의 협사도(夾砂陶)와 다르다. 기벽이 두텁고 무거우며, 복부에 기둥모양[柱狀]·혹모양[瘤狀]·유상(乳狀) 등의 손잡이를 지닌 통형관(筒形罐)·옹(瓮) 등의 기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선사 유적지의 문화 내용과 판이하게 다르다.

1979년에서 1981년까지 길림성 문물공작대(文物工作隊)·길림시 박물관 등이 길림 양둔 대해맹(楊屯大海猛) 유적지를 발굴할 때에 제3기 문화의 무덤에서 대량의 장신관(長身罐)을 출토하였는데 거치문(鋸齒紋) 띠무늬(帶飾)가 부가되어 있었다. 이런 토기의 구연부 무늬는 영벽 고분군에서 채집한 토기 구연의 무늬와 매우 유사하며, 다만 토기색이 일부 구별된다. 양둔 대해맹 토기의 색깔은 주로 흑갈색이 다수를 차지하고 홍갈색이 적게 보이는 반면, 영벽의 토기가 홍갈색이 다수를 차지하고 흑갈색이 적게 보인다는 점에서 시간상 양둔에 비해 약간 이르다.

양둔 무덤의 연대가 방사성 탄소 측정 연대에 의하면 약 1505±70년 전이며, 나무연륜[樹輪] 교정 연대가 기원 510년이다. 개원통보(開元通寶)가 출토되었던 사실 등을 고려하면 상한은 수말 당초(隋末唐初)이고 하한은 당(唐) 중엽이다. 영벽 고분군수(隋)에서 당초(唐初)의 말갈 문화 유적지와 유사하므로, 속말말갈 문화 유적에 속한다.

참고문헌
  • 『汪淸縣 文物志』(吉林省 文物志 編委會 主編, 1983)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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