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외자 유적

한자 西崴子 遺蹟
중문 西崴子遗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서외자향  
시대 선사/철기
상세정보
성격 유적
면적 약 100,000㎡
문물|보호단위등급 현 문물 보호 단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7년 11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8년 5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3년
현 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서외자향
원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서외자향
정의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서외자향에 있는 철기 시대의 유적.

위치

서외자 유적이 위치한 서외자(西崴子)는 왕청현(汪淸縣) 서쪽 8.4㎞의 알아하(嘎呀河) 북안 평원 위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중간에는 왕청-연길(延吉) 간 도로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57년 서외자 동변의 알아하(嘎呀河)에서 동명교(東明橋) 축조 공사 중에 알아하(嘎呀河) 우안의 산기슭 완만한 비탈에서 많은 석기와 소량의 토기 조각을 발견되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문관회(文管會)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조사하였으나 유적지는 이미 파괴된 상태로 고분인지 유적지인지 판별하기 어려웠으며, 출토된 유물 전부는 회수하였다.

1983년 연변조선족자치주 문물보사대(文物普査隊)가 재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는 이전에 알아하 좌안 평원의 논 속에서 많은 토기 조각과 소량의 석기를 출토하였다는 것을 반영한 조치였다.

출토 유물

1957년 알아하(嘎呀河) 우안의 산기슭 완만한 비탈에서 채집한 유물은 다수가 석기이며, 종류는 석부(石斧)·석도(石刀)·석촉(石鏃)·석검(石劍)·석착(石鑿)·고리모양 석기[環狀石器]·흑요 석기·옥주(玉珠) 등이다. 석기 가운데 흑요 석기는 압탁(壓琢)을 거친 것을 제외하고 모두 마제(磨製)이다. 옥주는 8건으로 모두 청록색 옥석을 갈아 표면이 광택이 난다. 옥주의 크기는 제각각으로 직경 5.2∼2㎝ 사이이다.

석촉의 출토 수량은 비교적 많아 총 50여 건이다. 항상 보이는 유엽형(柳葉形)·삼각형(三角形)·추형(錐形) 등을 제외하면 쌍익무정(雙翼無鋌)의 석촉 1건이 있는데 가공이 섬세하고 조형이 정교하다.

한편 1983년 재조사를 진행할 때 이전에 알아하 좌안 평원의 논 속에서 많은 토기 조각과 소량의 석기가 출토되었다는 현지인들의 전언이 있었다.

의의와 평가

서외자 유적과 관련하여 『왕청현 문물지』에서는 알아하 우안과 좌안의 유적 성격을 달리 보고 있다. 알아하 우안의 산기슭에서 출토된 유물은 주로 석기이며, 유적지에서 많이 보이지 않는 옥주(玉珠) 등이 있다는 점에서 무덤으로 추정한다. 반면 무덤 맞은 편에 있는 알아하 좌안의 논은 무덤과 옹일한 시기의 유적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알아하 우안에서 고분 관련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정하기는 어렵다.

서외자 유적의 연대는 출토 유물이 인근의 백초구(百草溝) 유적신화려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과 동일하므로, 연대는 대체로 서로 같다고 보여 양한(兩漢) 시기로 추정된다. 『후한서』 동이전 및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의 기록과 최근의 고고 조사와 연구에 근거하면, 양한 시기에 현재 길림성의 연변 지구[돈화 제외]와 흑룡강성 동남 일부분은 러시아연해주 일부분을 포함해서 고대 예맥족계인 북옥저인의 거주지이다. 따라서 서외자 유적 또한 고대 북옥저인의 유적지에 속한다.

참고문헌
  • 『汪淸縣 文物志』(吉林省 文物志 編委會 主編, 1983)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