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려 고분군

한자 復興閭 古墳群
중문 复兴闾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백초구진 부흥촌  
시대 선사/청동기|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돌방 무덤(석실묘)
문물|보호단위등급 현 문물 보호 단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3년 가을
문화재 지정 일시 1961년
소재지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백초구진 부흥촌
모형 전시처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백초구진 부흥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왕청현(汪淸縣) 백초구진(百草溝鎭) 부흥촌(復興村) 동북에 있는 청동기 또는 발해 시대의 고분군.

위치

부흥려 고분군은 백초구진(百草溝鎭) 부흥촌(復興村) 동북 약 0.5㎞ 지점 산기슭의 완만한 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연길(延吉)-왕청(汪淸) 도로가 인접해 있다. 고분군 북부의 산 정상에는 발해 시대의 작은 성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53년 길림성 박물관이 백초구 유적신화려 고분군을 발굴할 때, 고분군이 정리되었다. 조사 결과 부흥려 고분군은 조를 이루어 매장한 것이 확인되었다. 3조(組)를 볼 수 있는데 4기의 단인장(單人葬)이 제1조를 이루며, 그 서쪽으로 약 80m 떨어진 곳에는 5기의 파괴된 무덤이 제2조를 이루며, 제1조 무덤의 북측 언덕 위에 3기의 합장묘가 제3조를 이룬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개간하지 않은 수풀 속에 아직 조를 이룬 무덤이 있다. 정리한 무덤은 총 6기로 제1조의 4기 단인장과 제2조의 2기의 합장묘이다.

형태

부흥려 고분 4기의 단인묘 중 1기만이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나머지 3기는 남아 있는 부분이 매우 적다. 무덤과 무덤 사이의 거리는 약 1.5m이며, 2열로 배열되어 있다. 온전한 1기는 길이 1.64m, 너비 0.4m, 높이 0.48m이며, 정연하지 않은 화강암으로 층층이 쌓았다. 머리 부분은 비교적 방형을 이룬 큰 석판을 세웠으며, 다리 아래는 막지 않았다. 묘문(墓門)이 남아 있고, 묘실 바닥[墓底]은 땅을 다지고 돌을 깔지 않았으며, 정상부에는 덮개돌[蓋石]이 있다.

석관 외부의 양측에는 돌[石塊]이 쌓여 있는데 대략 원형 분구를 이루며, 직경은 약 2m이다. 인골은 비록 부패하였으나 단인(單人)임을 판별할 수 있으며, 머리는 북쪽·다리는 남쪽에 두었고, 앙신직지(仰身直肢)이다. 부장품은 없다.

2기의 합장묘는 산비탈 위의 배수구에 자리하며, 석실 우측 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두 무덤의 형식은 기본적으로 동일한데 묘벽은 돌로 층층이 쌓았고, 내벽은 비교적 평평하다. 묘문은 남쪽을 향하고, 문미(門楣)는 비교적 긴 대석판을 사용하였으며 문틀[門框]은 비교적 큰 석조(石條)로 만들었다. 문은 봉석(封石)하지 않았으나 두 개의 정연하지 않은 돌을 문 정중앙에 놓아 두었다.

묘실 바닥은 황사토(黃砂土)에 자갈[砂礫]을 섞어 다졌으며, 묘정(墓頂)은 석판으로 봉(封)하였다. 묘실은 길이 2.2m, 너비 1.65m이며, 문은 너비 0.8m, 높이 0.7m이며, 묘벽은 높이 0.6m이고, 묘실 바닥과 묘정(墓頂) 사이의 높이는 약 1.1m이며 묘도(墓道)는 없다.

출토 유물

부흥려 고분군에서는 출토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현황

부흥려 고분군의 구조는 신화려(新華閭)·금성(金城) 등지의 선사 시대 무덤에 비해 진일보하였다. 특히 합장묘 2기의 구조가 주목되는데 장속(葬俗)이 발해 시대의 중소형 석실묘와 매우 유사하다.

무덤 속에 부장품이 없기 때문에 무덤의 연대를 비정하기 어렵다. 원 발굴자는 이곳의 고분군을 고대 북옥저 유적지로 보았다. 한편 『중국 문물 지도집-길림 분책』에서는 발해 시대로 추정하였다.

참고문헌
  • 『汪淸縣 文物志』(吉林省 文物志 編委會 主編, 1983)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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