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자 산성

한자 大砬子 山城
중문 大砬子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명월진 대립자촌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성격 산성
양식 토석 혼축
크기 340m[둘레길이]|42m[동벽길이]|86m[남벽길이]| 140m[서벽길이]|75m[북벽길이]
현 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명월진 대립자촌
원소재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명월진 대립자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안도현(安圖縣) 명월진(明月鎭) 대립자촌에 있는 발해 시대의 산성.

위치

대립자 산성명월진(明月鎭) 동북 장흥하(長興河) 하곡을 따라 5㎞ 정도를 가면 동으로 펼쳐진 높이 약 30m의 작은 언덕이 있는데, 이 언덕 동단에 축성되었다. 남으로 대립자촌과 약 1.5㎞ 떨어져 있다. 대립자촌의 동쪽에는 소명월구(小明月溝)가 있으며, 이로부터 용정현(龍井縣)의 삼도만향(三道灣鄕)을 지나 계속 가면 연길(延吉)에 이를 수 있다.

서쪽은 장흥구(長興溝)로서, 돈화현(敦化縣)의 대석두(大石頭)·왕청현(汪淸縣)의 합마당(蛤螞塘)·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현(寧安縣)경박호(鏡泊湖) 일대를 지날 수 있다. 언덕 서북부는 높은 산과 이어졌고 그 나머지 삼면은 개활지의 하곡 평지이다. 명월진에서 장흥 방면으로 나가는 도로가 산기슭에 붙어 장흥하와 평행하게 지난다.

산성의 북·동 양측은 여러 해 채석하여 인공 절벽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벽은 존재하지 않으며, 서부는 완만한 비탈이고, 장흥 방면으로 나가는 옛길은 산성 서측에서 고개를 넘어 통과한다. 북벽과 서벽은 계단식 밭을 만들면서 파괴되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희미한 흔적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형태

대립자 산성의 형태는 불규칙하여 약간 사다리꼴[梯形]을 띠는데 동벽 길이 약 42m, 남벽 길이 86m, 서벽 길이 140m, 북벽 길이 75m 등 전체 둘레는 약 340여 m이다. 남벽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성벽의 기저부는 흙으로 다졌으며 상부는 돌을 쌓았는데 기저부 너비 6m, 높이 약 2m이다. 성 동부에는 소성(小城)이 하나 붙어 있는데 두 성이 서로 접하는 곳에는 담장 두 줄이 병행하며, 그 중간에는 너비 6m, 깊이 1m의 도랑이 있고 그 남부는 산 아래와 직통한다. 소성의 동·북 두 담장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남벽의 서단에 석장(石墻)이 산 아래로 펼쳐졌는데 길이 39m이며, 남벽 외측은 너비 약 20∼30m의 평탄지이고, 그 남단은 절벽이다. 평지의 주변에는 높이 0.5m 정도의 위장(圍墻) 흔적이 있다. 성 안은 모두 경작지로 개간되어 유적과 기타 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현황

대립자 산성 안의 지표에는 윤제(輪制) 황갈색 또는 회색의 니질도(泥質陶)가 산재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로손잡이[橋狀形耳] 토기편과 권연(卷沿) 토기구연부 잔편 등이 보이며, 그 밖에는 태토가 백색을 띠는 토기 잔편이 있다. 현지 거주인에 의하면 만주국 시기에 도로를 건설 할 때 이곳에서 철전(鐵箭)과 철과(鐵鍋)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출토 기물(器物)을 보면, 대립자 산성이 곧 발해 시대의 고성이었고, 요·금 시대에 계속하여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리적 위치를 보면, 대립자 산성은 고대 교통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어 소명월구와 장흥구 일대를 지나는 교통로를 방어할 수 있다. 당시에는 고대 군사 중진(重鎭)이었다.

참고문헌
  • 『安图县文物志』(吉林省文物志编委会, 1985)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中國地圖出版社,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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